일상을 위협하는 화학 제품 부작용… 우리는 다시 안전을 찾을 수 있을까?
지난 8월, 기준치를 초과한 살충제 성분이 들어간 ‘살충제 계란’ 이 한국을 떠들썩하게 만들었습니다. 유럽에서 시작된 살충제 계란 파동이 국내에까지 영향을 미친 것인데요, 농림축산식품부는 유럽지역 계란에서 피프로닐 성분(여름철 닭에 달라붙는 진드기 퇴치 살충제의 주요 성분)이 검출된 것을 계기로 ‘살충제 계란’ 파문이 확산되자 일부 산란계 사육 농장을 표본으로 뽑아 잔류농약 검사를 실시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경기 남양주시 소재 8만 마리 규모의 산란계농장에서 생산된 계란에서 피프로닐 살충제가 검출되면서 국내 역시 ‘살충제 계란’에서 안전하지 못하다는 불안감이 더욱 빠르게 확산된 것입니다. 살충제 계란 논란이 시작된 8월 이후 한달여가 지난 상황이지만 아직도 피프로닐 성분이 기준치를 넘어서는 계란이 나오고 있는 상황으로, 살충제 계란에 대한 공포는 줄어들 기미 없이 더욱 확산되어 가고 있습니다.
▲ 사진출처 : kaboompics
‘살충제 계란’, ‘생리대 파동’… 케미포비아(화학 공포증)’가 확산된다.
하지만 문제는 여기서 끝난 것이 아니었습니다. ‘살충제 계란’ 사태가 채 마무리되기도 전에 ‘생리대 부작용’ 문제가 터진 것이죠. 여성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특정 생리대를 사용한 뒤 부작용이 나타났다는 불만이 잇따라 나온 것입니다. 소비자들의 항의가 이어지자 식약처는 국내 생리대 제조업체 상위 5곳에 대해 현장 점검을 실시했습니다.
사실 이러한 생리대에 대한 문제 제기는 지난해 10월부터 시작되었는데요, 여성환경연대에서는 강원대 김만구 환경융합학부 교수팀에 상위 4개사의 생리대 11개 제품에 대한 성분 조사를 의뢰했고, 이로부터 5개월 뒤인 올해 3월, 김만구 교수팀에서 11개 제품 모두에서 휘발성유기화합물질이 검출되었다고 발표한 것입니다. 하지만 당시에는 큰 이슈가 되지 못했는데요, 온라인 여성 커뮤니티에서 특정 생리대에 대한 불만 사례가 쏟아지고 청원이 계속되자 해당 연구 결과가 다시금 재조명 받게 되었습니다. 식약처에서는 정확한 검사결과가 나올 때까지 기다리라는 입장이지만, 당장 제품을 사용해야 하는 입장에서는 답답한 일이지요. 결국 여성들은 스스로 ‘안전한 생리대’를 찾아 나서게 되었습니다. ‘면 생리대’, 해외에서 ‘환경 인증’을 받은 제품, 그리고 ‘생리컵’ 등을 사용하는 움직임이 전국적으로 있는 상황입니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먹는 것, 그리고 사용하는 생필품들에서 발견된 화학물질은 지난 2011년의 ‘가습기 살균제’ 사건을 사람들에게 다시금 떠올리게 하며 ‘케미포비아(화학 공포증)’를 확산시키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어떤 화학제품이 위험한지 알 수 없으니 아예 쓰지 않는 것이 상책이라고 생각하며 ‘노케미족(No-Chemi)족’도 늘어나고 있습니다. 실제로 화학 성분이 들어간 생활용품의 매출이 뚝 떨어졌고, 밀가루, 식초, 베이킹소다의 판매가 늘고 천연세재의 판매량 역시 증가했는데요, 전문가들은 이와 같은 ‘케미포비아’ 현상이 한동안 지속될 것으로 예측하고 있습니다.
▲ 사진 출처 : kamboopics
노케미(No-Chemi) 라이프
노케미는 화학물질을 거부하겠다는 뜻이지만 속내에는 오가닉 라이프스타일을 지향하겠다는 바람을 담고 있습니다. 노케미는 이제 막연한 개념을 넘어 하나의 현상, 세대, 시장으로 발전하고 있는데요. 정부에서는 리빙용품이나 식품 등에 들어가는 ‘화학 첨가물의 한계’ 수치를 법률로 정해놓았고 그 수치를 믿고 우리는 화학 첨가물이 들어있는 제품들을 믿고 사용하게 되지만 순수 오가닉 제품을 만드는 기업에서는 ‘허용된 물질 가운데 암을 유발하는 물질이 얼마나 많은데!’라며 화학 제품 제조 기업과 소비자에게 끊임없는 경고를 보내고 있습니다.
물론 완벽한 ‘노케미’는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지만, 가능한 범위에서 노케미를 실현하려는 노력들은 ‘DIY노케미’ 등의 현상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3대 자연세재로 각광받는 ‘베이킹소다’, ‘구연산’, ‘과탄산소다’ 등의 판매량이 늘어나는 것인데요, 특히 베이킹소다는 설거지, 주방청소, 욕실청소, 냉장고, 과일 세척 등 살림살이 곳곳에서 활용되는 대표적인 자연 세재로서 인체에 전혀 해를 끼치지 않는 물질입니다.
‘노케미 라이프’ 시장은 최근 급격하게 각광받기는 했지만, 오래전부터 있어왔던 시장입니다. 노케미 제품 시장은 미국, 유럽, 일본, 뉴질랜드 등에서 오래전부터 확장 일로를 걷고 있는데요, 국내에서도 점차 노케미를 표방한 제품들이 늘어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노케미 제품을 사용하는 사람들은 주로 아이허브(www.iherb.com), 비타트라(www.vitatra.com) 등 해외의 오가닉 사이트에서 직구형태로 제품을 구입하거나 마트의 오가닉 코너를 이용하는데요, 노케미 선구자들이 해외사이트를 선호하는 이유는 첫째로 제품이 다양하다는 점도 있지만더 중요한 것은 ‘웹사이트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 엄격한 성분표시’ 때문입니다. 제품을 직접 보지 않더라도 웹사이트에서 성분을 확인할 수 있으니 검색에서 끝나지 않고 구매로 이어지는 것이지요.
▲ 사진출처 : Pixabay
우리는 노케미로 살 수 있을까?
우리는 이미 많은 화학제품들 사이에 둘러싸여 있습니다. 가공식품은 물론, 가공하지 않은 과일류라 하더라도 운반이나 포장 과정에서 플라스틱 등과 접촉할 수 있고, 비닐봉지도 모두 화학제품이며 사료와 물에서 화합물을 흡수하는 가축에서 얻는 육류 역시도 모두 화학성분과 접촉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최대한 의식해서 화학제품을 피한다고 해도 의식하지 못하는 곳에서 항상 화학 성분으로 이루어진 무언가가 우리의 주변에 있고, 또한 그 성분을 우리는 섭취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아주 작은량이라 하더라도 말이지요. 하지만 어쩔 수 없이 화학제품들을 사용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을 넘어서, 가습기 살균제 사태나, 살충제 계란처럼 일상 속에서 우리의 생명을 위협받는 환경에 처한 것은 화합물과 관련한 법령이 제대로 마련돼 있지 않은 때문이 아닐지 생각해봅니다.
작년 6월 학술지 ‘네이처’ 6월 2일자에는 생태와 환경의 관점에서 악명 높은 법이었던 미국의 유해물질규제법(TSCA)이 1976년 제정된 지 40년 만에 마침내 개정의 수순을 밟았다는 사설과 뉴스가 실렸습니다. 유해물질을 규제하는 이 법이, 생태와 환경의 관점에서 악명 높은 악법이었던 이유는, 미국에서 어떤 회사가 새로운 화합물을 만들 경우 기본적으로 그 화합물은 유해하다는 증거가 나오지 않는 한 무해하다는 것을 규정하고 있는 법이었기 때문이지요. 바꿔 말하면 회사가 새 화합물을 내놓으면서 ‘아무 문제가 없다’는 몇 가지 기본 데이터만 제출하면 시장에 나갈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결국 그 화합물이 유해하다는 것이 판정날 때까지 노출된 사람들만 고스란히 피해를 봐왔던 것이지요. 그 동안 몇 차례의 법 개정 시도가 있었지만 막강한 업계의 로비로 번번이 좌절되다 유럽의 친환경적인 정책으로 인한 압박과 화합물에 대한 규제가 강화되는 세계적인 추세에 업계와 정계가 마침내 두 손을 들고 40년 만에 법이 개정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정부의 인증이나, ‘안전하다’라고 선전하는 기업의 말만 들어서는 언제 또 다시 ‘살충제 계란’, ‘가습기 살균제’ 사태가 벌어질지 모릅니다. 지금의 ‘케미포비아’나 ‘노케미’ 열풍이 단순히 관련 제품들을 불매하고, 최대한 스스로 안전한 제품을 찾아 사용하려는 노력에서만 그친다면, 지금의 ‘살충제 계란’ 사태가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잊혀졌을 때 얼마든지 제 2, 제 3의 ‘살충제 계란’이 나타날 수 있지 않을까요. 어떻게 하면 이 일이 단순히 해프닝으로 끝나지 않고, 더 안전하고 살기 좋은 세상으로 나아가는 움직임으로 만들 수 있을지 주니어 앰배서더 여러분도 고민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