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지 않는 인종차별… 그리고 인종차별에 맞서는 사람들
지난 8월, 미국 버지니아 주 샬러츠빌에서 백인 우월주의자들이 시위를 벌였습니다. 현지시간 11일 밤 버지니아대 캠퍼스에서 횃불과 함께 시작된 시위는 결국 3명이 숨지고 30여명이 다치는 유혈 양상으로까지 번졌습니다. 전국에서 몰려든 6천여명의 극우 시위대는 나치의 구호인 ‘피와 영토’를 외치며 시민들과 충돌했지요. 극단적 백인우월주의 단체, KKK단의 전 대표도 참가해 시위를 부추겼습니다.
해당 시위는 시의회가 백인우월주의의 상징인 로버트 리 장군 동상 철거를 결정한 것에 대한 항의에서 촉발되었는데요, 이번 시위를 두고 트럼프 대통령이 한 발언이 인종차별 논란에 더욱 불을 붙이게 되었습니다. 이번 샬러츠빌 사태를 두고 트럼프는 백인우월주의자와 반(反) 유대인, 신나치 단체 등 극우세력과 맞불 시위대를 모두 비판했는데요, 트럼프 대통령의 이같은 양비론이 인종차별에 반대하는 많은 사람들의 분노를 사게 되었습니다.
▲ 사진출처 : freepik
거세지는 인종차별 논란
샬러츠빌 사태가 발생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25일 연방검사의 명령을 어기고 주민들을 불법 구금한 전 애리조나주 마리코파 카운티 경찰관을 사면하였습니다. 자칭 ‘미국에서 가장 터프한 경찰관’, 조 아르페이오는 지난 7월 무리한 불심검문을 해서는 안 된다는 연방검사의 명령을 어겼다는 혐의로 기소됐는데요, 백악관은 성명을 통해 “아르페이오는 경찰관으로 근무하는 동안, 범죄와 불법 이민의 재앙으로부터 주민들을 보호하기 위해 일생을 바쳤다”라며, “조 아르페이오는 현재 85세이며, 지난 50여 년간 국가를 위해 존경받을 만한 봉사를 했으므로 대통령의 사면을 받을 가치가 있다”라고 전했습니다. 조 아르페이오가 히스패닉계를 상대로 인종차별적 심문, 그리고 과도한 불심검문을 벌였고 이에 대한 경고 조치를 어기고 또 다시 무리한 불심 검문을 자행하다 기소된 것임에도 불구하고 일반적인 검토 과정을 건너 뛴 채 대통령으로부터 사면권을 받은 것은 샬러츠빌 사태에 이어서 다시 한 번 인종차별 논란을 불러왔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행보에 대한 비난도 더욱 거세지게 되었죠.
▲ 사진 출처 : Flbonaccl Blue
인종차별에 반대하는 사람들
샬러츠빌 사태 이후로 남부연합 기념물 동상을 철거해야 한다는 측의 목소리는 더욱 거세졌습니다. 텍사스대는 21일 새벽 로버트 리 동상을 비롯해 캠퍼스 내 남부연합 인물들의 동상 4개를 철거했습니다. 이 대학 그렉 펜브스 총장은 샬러츠빌 사태를 보고 철거를 결정했다면서 “남부연합 기념물들이 오늘날 백인우월주의와 네오나치의 상징이 됐다는 사실이 확실해졌다”고 말했습니다. 메릴랜드 주 볼티모어 역시 샬러츠빌 사태 이후 시내의 로버트 리와 스톤월 잭슨의 동상을 철거했고, 노스캐롤라이나주 더럼의 듀크대도 지난 19일 캠퍼스 내 로버트 리 동상을 철거했습니다. 로버트 리의 동상은 샬러츠빌 사태에 분노한 이들에 의해 얼굴 곳곳이 뜯겨나가는 등 훼손된 상태였지요.
그리고 미국에서 시작된 인종차별 논란은 다른 나라에도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샬러츠빌 사태가 일어난 직후인 8월 20일, 캐나다의 벤쿠버 시청 앞에서 인종 차별을 부추기는 시위가 벌어진다는 소식에 많은 인종차별 반대자들이 모여 이를 무력화 시켰습니다. 이 날 벤쿠버의 반이민, 인종주의 단체가 시청 앞에서 국경통과 강화를 요구하는 이민제도 반대와 반이슬람 시위를 벌일 예정이었는데요 해당 소식을 접한 많은 벤쿠버 시민들이 이들의 시위에 반대의 목소리를 전하기 위해 모여들었는데 그 수가 4천명을 넘어섰습니다. 시위 현장에 모인 인종차별주의자들보다 압도적으로 많은 수였지요. 인종차별을 반대하는 사람들의 모임은 대체로 평화로운 분위기로 진행되었으며 그 와중에 인종차별주의자들이 이들과 마찰을 일으키며 폭력적인 행태를 보여 경찰이 5명을 체포하고 2명을 강제 귀가 조치시켰습니다.
▲ 사진출처 : Nicolai Grut
다양성의 가치
독일의 에데카(EDEKA)는 독일 최대 슈퍼마켓 체인 중 하나인데요, 지난 8월 19일 함부르크에 있는 에데카 매장에서는 기이한 풍경이 펼쳐졌습니다. 물건으로 빼곡해야 할 선반과 냉장고 등에 물건의 대부분이 빠져 있었던 것입니다. 매장 측에서 물건을 채워 넣는 것을 잊어버린 것이었을까요? 하지만 실상은 에데카 측에서 일부러 물건을 빼놓은 것이었습니다. 빼놓은 물건에는 하나의 기준이 존재했지요.
“외국산 제품”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이 날 에데카를 찾은 고객들은 빈 매대에 놓여진 하나의 안내문을 볼 수 있었는데요, 안내문의 내용은 ‘외국산 제품은 모두 뺐습니다’라는 것이었습니다. 에데카는 이날 하루 원재료와 생산과정 모두 독일 내에서만 이루어진 제품을 판매했는데, 에데카가 이러한 결정을 한 이유는 독일산 제품을 애용하자는 취지가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인종주의와 민족 다양성에 대한 메시지를 자신의 매장을 통해 전달한 것이지요. 에데카의 공식 대변인은 이렇게 밝혔습니다.
“에데카는 다양성을 지지합니다. 우리는 독일 내의 여러 지역에서 생산된 제품들을 통해 보다 다양한 음식들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에는 다른 나라에서 생산된 제품들도 포함됩니다. 이 모든 물건들을 통해 우리는 고객에게도 가치있는 독특한 다양성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에데카는 이날 인종의 경계, 국경의 경계가 점차 희미해지고 있는 글로벌 시대에서 다양성이 지니고 있는 중요한 가치를 누구나 알기 쉬운 방식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인종차별에 반대하는 많은 사람들이 에데카 슈퍼마켓의 대담한 캠페인을 반기며 응원의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 사진출처 : yisrls
인종차별은 인간의 예의와 도덕에 관한 문제
이번 샬러츠빌 사태는 전 세계인들에게 인종차별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웠습니다. 샬러츠빌 사태를 계기로 애플은 백인우월주의 사이트에서 애플페이 서비스를 차단하기로 결정하였는데요, 팀쿡 애플 CEO는 애플 직원들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평등은 나의 신념과 가치의 핵심이다”라고 운을 띄우며 이번 샬러츠빌 사태에 대해 “좌-우, 보수와 진보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인간의 예의와 도덕에 관한 것이다”라며 강하게 규탄했습니다. 애플 뿐만이 아니라 다른 글로벌 IT 기업들도 샬러츠빌 사태의 영향으로 백인우월주의 단체의 웹사이트에 대해 제재 조치를 취하고 있으며 페이스북 역시도 사건 이후 Unite The Right의 페이스북 페이지 및 다수의 페이지를 삭제하면서 증오표현, 테러행위 또는 증오범죄에 대한 관련 게시물에 대해 강력한 제재 조치를 취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21세기를 살아가고 있지만, 여전히 세계인들 중 일부는 구시대의 사고방식을 가지고 서로 대립하고 있습니다. 다행인 점은, ‘평등’이라는 가치를 대다수의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옳다’라고 여긴다는 것입니다. 개개인이 가지고 있는 평등에 대한 기준이 다를 수는 있지만, 평등이 인류의 보편적인 가치라는 것에는 많은 사람들이 동의하고 있지요. 세계에는 다양한 국적, 다양한 인종의 사람들이 섞여서 살아가고 있고 특정 인종이 보다 우월하다고 믿는 것은 지극히 편협된 사고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독일의 슈퍼마켓 ‘에데카’가 보여주었듯이, 다양성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 것은, 지금 세계를 구성하고 있는 많은 것을 부정하는 일이 아닐까요. 이번 샬러츠빌 사태로 인해 촉발된 전 세계적인 인종차별 논란을 통해 주니어 앰배서더 여러분들도 ‘다양성’과 ‘평등’의 가치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았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