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 스피커, 어디서 시작해서 어디까지 왔을까?
“냉장고 속 좀 보여줘.” 먹성 좋은 주앰지기는 집에 가면 가족보다 냉장고에 달린 AI스피커에게 더 먼저 말을 걸 때도 있답니다. 덕분에 힘들여 문을 열 필요없이 냉장고 속을 확인할 수 있지요. “케냐의 수도는 어디야?” 모르는 것도 물어보고요. 기계와의 대화는 SF영화에서나 가능한 것처럼 여겨졌는데요. 불과 2-3년 만에 사물인터넷(Internet of Things, 각종 사물에 센서와 통신 기능을 내장하여 인터넷에 연결하는 기술)의 중심으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집 밖에서 집 안의 온도를 조절하거나 세탁기를 돌리기도 하고, 뉴스를 읽어 달라고 요청하기도 하고, 방에 누워서 거실의 조명을 끄기도 하고, 소파에 누워서 TV를 켜거나 현관문을 열 수도 있게 되었지요.
▲ 사진출처 : 애플
AI스피커, 사물 뿐 아니라 사람 사이도 연결한다
AI스피커는 사람과 사물 뿐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도 연결하고 있습니다. AI 스피커는 처음에는 길찾기, 음악 재생, 뉴스 브리핑, 어학 사전 등 정보 검색용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지금은 검색 결과 나오는 업체들과 검색한 사람을 연결해주는 플랫폼 서비스를 통해 우리 생활 전반에 활용되고 있습니다. 택시 회사를 검색한 사람에게 검색결과를 보여주는 데서 그치지 않고 직접 예약을 해주거나, 주변 치킨집을 검색한 사람에게 치킨을 주문해주고, 연락처를 검색한 사람에게 해당 연락처로 메시지를 보내거나 전화를 걸어주는 식으로요.
사람의 호기심이 무궁무진하듯, 호기심 해결방법인 검색과 연결할 수 있는 산업도 무궁무진하겠지요? 구글, 애플, 아마존을 비롯해 전 세계의 테크놀로지 회사들이 AI 스피커를 앞다투어 출시하고 있는 이유입니다. 글로벌 컨설팅업체인 액센추어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현재 미국의 인터넷 사용 인구 중 21%는 AI 스피커를 갖고 있고, 이 비율은 올해 말 37%까지 늘어날 것으로 전망됩니다. 특히 인도에서는 AI 스피커 사용비율이 현재의 14%에서 40%까지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합니다.
키보드 없는 컴퓨터, 스마트폰 없는 세상을 상상할 수 있나요?
이처럼 AI 스피커의 인기가 늘어나고 있는 이유는 손을 이용하지 않고도 편리하게 기기나 업무를 관리하거나 제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스마트폰이나 컴퓨터를 이용하려면 눈과 손 2개의 감각기관을 동시에 사용해야 해서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하고, ‘로그인-검색-결과 비교 및 확인-명령 주문’까지 2~3단계 이상의 노력이 필요한데요. AI스피커는 집중력이 덜 필요하고, 음성인식으로 사용자가 누군지를 인식하고 말 한마디로 전체 과정을 끝내는 등 의사결정과정을 단순하게 줄여줍니다. 또한 AI 스피커는 머신러닝을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음성 관련 빅데이터가 쌓일수록 응답률의 정확도가 높아져 더욱 최적화된 서비스를 제공하게 됩니다.
2017년 말에 스탠퍼드대학교에서 음성 인식과 스마트폰 타이핑 간 효율성 정도를 비교한 연구 결과 최근 AI스피커의 사용이 잦아지며 음성 인식 사용자는 스마트폰 사용자보다 문자나 이메일을 보낼 때 평균적으로 3배 가까이 빠른 속도를 보였다고 합니다. 오타율 역시 음성 인식 사용 시 2.93%, 키보드 사용 시 3.68%로 더 낮았다고 하네요.
이런 AI스피커의 편리함은 삼성, 애플 등 스마트폰 업체들까지 위협하고 있습니다. 액센추어가 전 세계 19개국에서 진행한 온라인 설문조사에 따르면 ‘디지털 음성 비서 기기를 사용한 후 스마트폰을 덜 썼느냐’는 질문에 답한 약 2,300명 가운데 66%는 ‘매우 그렇다’ 혹은 ‘그렇다’로 답했다고 합니다.
스마트폰은 전화기에 인터넷을 연결하고, 정해진 버튼이 아닌 화면을 터치하게 한다는 발상의 전환으로 세상의 중심이 됐습니다. 그러나 손에 힘이 없거나 눈이 나빠서 터치가 익숙하지 않은 사용자에게 스마트폰은 여전히 어려운 도구입니다. 음성은 터치보다 훨씬 더 익숙한 방법이기 때문에 유아나 노인층까지 사용 연령이 확장될 뿐 아니라, 시각 및 신체장애인에게도 활용도가 높습니다.
약자를 위해 발명된 기술이 모두를 편리하게 만들다
AI스피커의 핵심인 음성인식 기술과 글자를 말로 읽어주는 기술은 처음에 시각장애인을 위해 개발되었습니다. 그러나 시각장애인은 소수이기 때문에 수익성이 낮아 투자 가치가 떨어지니외면되어 왔습니다. 하지만 컴퓨터가 많은 데이터를 분류해서 같은 집합들끼리 묶고 상하의 관계를 나누는 등 사람처럼 생각하고 배울 수 있는 인공지능 알고리즘이 개발되면서 모두에게 편리한 기술로 거듭났습니다. 미리 개발된 음성인식 기술이 없었다면 인공지능 기술만으로는 불가능했던 일입니다.
마이크로소프트에서 스마트기기 연구를 담당하는 헥토르 민토(Hector Minto)는 말합니다. “우리는 사람들이 AI스피커를 통해 현재 접근 가능한 모든 것에 연결되기를 바라는 게 아닙니다. 우리는 사람들이 이 기술을 통해 미래를 꿈꾸게 되기를 바랍니다.”
▲ 사진출처 : freepik
기술 자체는 중립적이지만, 사용하는 방법에 따라 위험해질 수도 있습니다. 기밀 폭로 사이트 위키리크스는 작년 3월에 미국 중앙정보국(CIA)이 애플, 삼성 등의 스마트폰과 스마트TV에 악성코드를 심어 도청, 감청을 했다고 폭로한 적이 있습니다. 스마트TV는 전원을 끄고 켜는 제품이지만 스마트폰은 하루종일 나를 따라다니고, AI스피커는 거의 내 방이나 거실 같은 사적인 공간에서 늘 기기를 켜놓게 됩니다. AI스피커는 누가 내 이름을 불렀을 때 대답하기 위해서 모든 소리를 듣고 있기 때문에 해킹에도 쉽게 노출될 수 있습니다. 날로 편리해지는 기술의 양면성을 고려하는 생각이 필요해지는 시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