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위를 쫓는 세계의 음식 문화
본격적인 무더위가 시작되려 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엔 매년 7월부터 8월 사이에 초복(初伏)·중복(中伏)·말복(末伏)의 삼복(三伏)이 있고 이를 ‘복날’이라고 하는데요. 복날에는 삼계탕 등의 보양식을 먹는 풍습이 있지요. 초복은 하지로부터 세 번째 경일, 중복은 네 번째 경일, 말복은 입추로부터 첫 번째 경일인데요. 천간(天干) 중 경일(庚日)을 복날로 삼은 이유는 경(庚)이 오행 중 ‘금(金)’을 나타내며 계절로는 가을을 상징하기 때문인데요, 삼복에 대한 기록은 조선시대 기록물부터 확인할 수 있는데 학자들은 이를 중국 진나라에서 시작된 속절(俗節)에서 유래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조선 후기 간행된 ‘동국세시기’에 따르면 진덕공 2년에 처음으로 삼복 제사를 지냈는데 성 사대문 안에서는 개를 잡아 해충으로 인한 농작물 피해를 방지했다고 하였다고 서술하고 있습니다. 조선시대에서는 궁중에서 삼복맞이 피서를 위해 벼슬아치들에게 얼음을 하사했는데요, 민간에서는 지금과 비슷하게 계삼탕(삼계탕)과 구탕(보신탕)을 먹었다고 합니다.
여름의 더위를 음식으로 이기고자 하는 이러한 음식 문화는 우리나라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나라처럼 복날과 같은 특정한 날에 보양식을 먹는 것은 아니더라도, 각각 여름을 나기 위해 먹는 음식들이 존재하는데요, 오늘은 무더위를 쫓기 위한 세계의 음식 문화를 한번 알아보고자 합니다.
출처 : Republic of Korea flickr
중국의 보양식 “불도장(佛跳牆)“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우리나라의 ‘복날’도 중국에서 유래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죠. 중국에서 더위를 이기는 대표적인 보양식은 바로 ‘불도장’인데요. 중국의 불도장은 닭고기, 오리고기, 돼지힘줄, 비둘기알, 상어 지느러미, 건전복, 표고버섯, 죽순, 인삼 등의 주재료와 여러 부재료를 포함해 30가지의 몸에 좋은 식재료를 끓여서 만드는 음식입니다. 그 과정이 매우 까다로워 요리시간도 오래 걸리는데요. 다양한 식재료가 들어간만큼 칼슘과 단백질이 풍부해 신체 면역력을 강화시키는데 매우 효과적이라고 합니다. ‘불도장의 뜻은 ‘승려가 절의 담장을 넘는다’는 뜻인데, 불도장의 냄새에 이끌려 담장을 넘을만큼 맛있다는 것이지요.
너무나 맛있어 도를 닦은 스님까지 파계시켰다는 요리로 알려져 있지만 불도장은 사실은 가난을 구제한 음식이라고 합니다. 불도장은 널리 알려진 중국요리 치고는 역사가 그다지 긴 음식이 아닌데요. 중국 4천년의 역사 속에서도 불도장은 기껏 150년 밖에 되지 않은 음식입니다. 불도장을 보고 청나라 황제가 즐겨 먹었던 보양식, 중국 황실 잔치인 만한전석에 빠지지 않고 나왔던 요리라고 광고하지만 사실 중국 황제가 먹어보기는커녕 구경도 하지 못했던 요리인데요. 특히 불도장이 만들어졌을 때는 황제가 살고 있던 북경에는 알려지지도 않았던 먼 지방의 특산 요리에 불과했습니다.
불도장은 중국 남부 복건성에서 처음 만들어졌는데, 청나라 말 복건성의 금융기관인 관은국 책임자가 상급관청의 감독관을 대접하려고 만든 음식이 불도장의 뿌리로 알려져 있습니다. 속된 말로 감독관을 구워삶기 위해 최고의 산해진미 재료를 동원해 한번 맛보면 반하고 감동해서 청탁을 들어줄 수밖에 없는 요리를 만들었던 것이지요. 그리고 이후 관청에서 일했던 주방장이 독립해 음식점을 개업하면서 일반인에게도 알려지기 시작했습니다.
출처 : Dentist Chef
그리고 중국은 1978년, 덩샤오핑의 개혁개방 선언과 이듬해인 1979년 미국과의 공식 수교를 맺은 이후 중국은 국가의 총체적인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치며 서방세계와 적극적으로 교류를 펼치기 시작하는데요. 1980년대에는 중국이 외국 국가의수반을 초청해 베이징에서 정상회담을 개최하였고, 이때 중국의 외교 특징이 바로 ‘만찬 외교’ 였습니다. 초청한 정상을 황제에 준하는 최고의 예우로 대접했는데 이 때 세계적으로 알려진 요리가 샥스핀, 제비집 수프, 북경 오리구이, 그리고 불도장 등이었습니다.
즉 관은국 책임자가 상급관청의 감독관을 구워삶기위해 만든 요리인 불도장은 이후 중국이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세계 각국의 정상들을 초청해 적극적인 외교활동을 펼칠 때 열과 성을 다해 외국 손님들을 대접하기 위한 음식이었던 것이지요. 뒤집어 보면 중국이 지금처럼 경제대국으로 발돋움 한 것은 단지 중국이라는 거대한 시장의 힘 때문만은 아니며, 지금은 기억조차 희미해졌지만 당시 중국에서는 외국 투자자를 감동시키려는 처절한 노력이 뒷받침 되었다는 것이지요.
스페인의 가스파쵸(Gazpacho)
태양의 나라라고 불리는 스페인. 그만큼 스페인의 더위는 만만치 않은데요, 그래서 스페인은 보양식으로 시원한 음식을 먹습니다. 바로 그 스페인의 대표적인 보양식은 바로 가스파쵸(Gazpacho)입니다. 가스파쵸는 원래 이슬람 음식으로 ‘젖은빵’이라는 뜻의 아라비아어인데요, 이슬람의 지배를 오랫동안 받아 온 스페인 남부지방은 음식에서도 이슬람의 영향을 받은 메뉴들이 많습니다. 12세기에 스페인으로 전해진 가스파쵸는 시간이 지나면서 스페인 전통요리로 자리잡게 되었는데, 가스파쵸는 토마토를 베이스로 피망, 고추, 양파, 샐러리, 오이 등 야채가 주가 되는 요리입니다.
열을 가하지 않고 만들어 ‘마시는 샐러드’라는 별명도 있는데요. 보통 만든 후에 하루 정도 냉장고에 넣어두었다가 마십니다. 차가운 수프와 같은 샐러드이기 때문에 갈증을 해소하기에도 좋고, 토마토 자체에 비타민이나 철분이 많기 대문에 기력 회복에 좋은 보양식으로 사랑받고 있습니다.
토마토는 미국 타임지가 선정한 ‘세계 10대 슈퍼푸드’로 토마토의 빨간 색소를 만드는 라이코펜이라는 성분은 매우 강력한 항산화물질로 과도한 스트레스 등으로 생기는 활성산소를 제거하는 동시에 혈관 내 노폐물까지 청소하는 역할을 합니다. 이에 따라 토마토는 전립선암이나 유방암 등에 도움을 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노화억제에도 효과적이지요.
차갑게 먹는 가스파쵸는 시큼한 맛을 지녀 여름철 식욕을 돋우는 전채요리로 제격인데, 새콤한 맛은 가스파쵸에 들어가는 와인식초의 맛도 한몫을 하고 있습니다. 발효식초인 와인식초는 피로물질인 젖산을 우리 몸에서 분해하기 때문에 피로회복에도 도움을 주죠. 가스파쵸는 빵과 잘 어울리는 음식이기 때문에 그냥 마시기도 하지만 갓 구운 바게트 위에 소스처럼 발라먹기도 합니다.
출처 : Jo del Corro
태국의 똠양꿍
‘세계 3대 수프’로 알려져있는 태국의 대표 보양식 똠양꿍은 한국에서도 흔히 먹는 음식입니다. 단맛, 신맛, 매운맛, 짠맛을 모두 느낄 수 있는 특유의 맛과 고수 등의 독특한 향신료를 사용함에 따라서 오는 향으로 호불호가 갈리는 음식이지만 태국 음식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여름철 자주 찾아먹는 보양식인데요. 똠양꿍의 뜻을 직역하면 ‘새우 샐러드국’이라는 뜻으로 타이식 새우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름자체에 ‘새우’가 들어가는만큼 똠양꿍의 주요 재료는 새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외에 신맛, 단맛, 매운맛, 짠맛을 내기 위한 각종 향신료, 고추, 피쉬소스, 라임 등이 주요재료로 들어가고, 그 외에 고수뿌리(샨챠이), 칠리페이스트, 설탕, 초고버섯, 타이바질, 고수 등을 사용합니다. 똠양꿍의 특징은 앞서 언급한 맛의 ‘조화’인데요. 인간이 느끼는 5가지의 맛 중에서 쓴맛을 제외한 나머지 맛이 조화롭게 어우러지는 똠양꿍의 맛에 대해 서로 다른 악기가 각각의 소리를 내면서 하모니를 이루는 오케스트라에 비유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똠양꿍이 지금처럼 태국을 대표하는 명품 요리로 진화한 배경에는 조선의 철종(1849-1863년)과 재위 기간이 비슷한 라마 4세(1851~1868년)의 개방정책이 있었습니다. 쇄국정책을 폐지하고 여러 나라의 문물을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예전에는 없었던 다양한 음식문화가 똠양꿍에, 그리고 태국요리에 녹아들었습니다. 포르투갈을 통해 쥐똥고추가 퍼지면서 태국요리에 매운 맛이 더해졌고, 인도 카레가 들어가면서 향신료의 맛이 강해졌습니다. 코코넛 밀크의 달콤하고 고소한 맛은 중국요리의 영향을 받았다고 하는데, 똠양꿍은 이렇게 여러 나라의 음식 문화가 태국 전통요리의 맛에 더해져 다양한 허브와 향신료, 그리고 풍부한 해산물과 열대과일이 조화를 이루는 복합적인 맛으로 진화한 것입니다.
라마 4세의 뒤를 이어 국왕에 오른 라마 5세 역시 유럽 문물을 도입하고 근대화를 추진하면서 태국은 자주적인 개화에 성공했고 동남아 국가 중에서 유일하게 독립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이런 라마 5세가 지방시찰을 나섰을 때 현지 주민들이 존경하는 국왕을 환영하는 마음에서 똠양꿍을 준비했고 이어 라마 6세 역시 관리들과 똠양꿍을 자주 먹으면서 똠양꿍은 원래 서민들의 음식이었던 똠양꿍은 왕실 요리로 격상되었습니다. 똠양꿍은 이렇듯 태국인과 왕실이 고난과 시련, 그리고 영광을 함께 나누며 발전하고 진화한 음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출처 : Travel Submit
프랑스의 포토푀(pot-au-feu)
우리나라에 삼계탕이 있다면 프랑스에는 포토푀가 있습니다. 프랑스의 대표 가정식 요리인 포토푀는 직역하자면 Pot on fire(불 위의 냄비) 정도의 뜻으로, 고기와 상비야채, 향신채 등을 냄비에 넣고 뭉근하게 오래 끓인 냄비요리(스튜)입니다. 이런 스튜는 전 유럽에 흔히 분포하지만, 프랑스의 포토푀는 국물보다 건더기를 크게 중시하는 점에서 다소 차이가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소고기, 당근, 순무, 리크(대파), 샐러리, 양파, 부케가르니, 레드 와인, 마늘의 조합으로 만드는데 가정요리 특성상 정형화 되어있는 것은 아니고, 가지고 있는 재료의 여부에 따라 약간씩의 변화가 나타납니다. 프랑스의 포토푀는 베트남으로 건너가 포 보(Pho bo)로 재탄생되기도 했습니다. 포 보의 기원은 이 포토푀의 남은 육수를 아까워하던 식민지 베트남인들이 거기에 국수를 말아먹기 시작한 것이 시초인데요.
베트남뿐만 아니라 포토푀는 일본으로도 건너가 오뎅과 유사한 양식 나베요리의 일종으로 겨울철 인기있는 가정식이 되었습니다. 쇠고기는 비싸기 때문에 쇠고기 대신 후랑크 소시지를 넣고, 채소는 양배추를 메인으로 하는 야채 스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일본식 발음으로는 포토후(ポトフ)라고 하는데요, 간단한 가정식이지만 만드는 방법이 크게 어렵지 않고 고기를 메인으로 하는 따뜻한 국물이 있는 음식이기 때문에 세계인들의 보편적인 입맛을 자극하여 여러 나라에 퍼져나갔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출처 : puamelia
영국의 장어젤리(Jellied eels)
유명한 축구선수 데이비드 베컴의 보양식으로 알려진 장어젤리(Jellied eels). 장어 젤리는 장어 한 마리를 듬성듬성 썰고 육수에 푹 삶은 후 식혀서 젤리처럼 굳힌 음식인데요. 18세기 런던 동부 지역에서 유래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템스 강에서 낚시를 하던 낚시꾼들이 여기서 잡힌 장어로 만들어 먹던 음식이라고 합니다. 조리 방법의 특성상 장어 특유의 비린내가 더욱 극대화 되기 때문에 보통 사람들은 손사레를 치게 만드는 음식이 되었는데요. 정석대로는 식초를 뿌리고 빵에 올려서 먹는 음식입니다. 장어 젤리는 생선 튀김인 피쉬앤칩스, 간 고기를 넣어 만든 민스파이와 함께 대표적인 ‘코크니’ 푸드로 통합니다. 여기서 코크니란 런던에 거주하는 노동자 계층을 낮춰 부르는 말입니다.
지역을 막론하고 노동자의 음식으로 살아남은 음식들은 몇 가지 공통점을 가지고 있는데, 먼저 값이 저렴해야 하고 열량이 높아야 하며 빠르게 많이 만들어져야 하기에 조리법이 복잡하지 않아야 하고 거리에 서서도 먹을 수 있는 단품이어야 합니다. 즉, 노동자들이 빠르고 간편하게 먹을 수 있는 패스트푸드여야 한다는 것이지요.
장어 젤리의 탄생 배경에는 경제적 이유가 가장 컸는데, 강에서 손쉽게 잡히는 민물장어는 내륙에 거주하는 이들에게 아주 유용한 식재료였습니다. 소금에 절이거나 식초에 절인 다른 생선과는 달리 훨씬 신선한 상태로 먹을 수 있었는데 이는 바로 장어의 질긴 장어의 생명력과 연관이 있습니다. 물에서 건져 올려도 쉬이 죽지 않아 운송과 보관이 용이했던 것이지요. 당시에는 누구도 장어가 보양식이라고까지 생각을 하지 않았지만 담백한 살코기 맛에 매료되어 중세 왕과 귀족, 수도원의 식탁에 자주 올랐다고 합니다.
이러한 장어 요리는 처음에 장어 파이의 형태로 길거리 노점에서 판매됐는데, 식은 장어 파이의 속은 젤라틴이 굳어 젤리처럼 되었습니다. 먹는 입장에서는 한 손으로 간편하게 먹을 수 있고 내용물이 흘러내리지 않아 인기가 높았습니다. 하지만 템즈강이 오염되고 장어 개체수가 급감하자 장어의 가격은 점점 높아졌고, 2차 대전 이후 장어 공급이 줄자 장어 파이는 다진 쇠고기를 넣은 민스파이로 바뀌었고 장어는 장어 젤리의 형태로 따로 판매되며 한동안은 노동자들의 고단함을 다래주는 인기음식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2000년대에 이르러 영국산 장어는 씨가 마르다시피 했고, 현재 유통되는 거의 대부분의 장어는 네덜란드와 아일랜드에서 수입된 것들이라고 합니다. 한 때 민스파이와 매쉬, 그리고 장어 젤리를 파는 식당은 런던에서만 100여 개가 넘었지만 지금은 열 곳이 채 안 될 정도로 그 수가 줄었습니다. 150년이 넘는 전통이 사라질 위기에 처한 것은 꽤나 안타까운 일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출처 : Rosebud 23
오늘은 세계 각국의 대표적인 여름 보양식에 대해 알아보았는데요, 각국을 대표하는 유명한 음식들에는 그 나름의 역사 또한 포함되어 있습니다. 어떤 음식들은 다양한 문화권으로 퍼져나가 그 나라만의 특색을 가진 새로운 요리로 변모되기도 하고, 또 다양한 국가의 음식문화가 조화를 이루어 특별한 음식을 탄생시키기도 합니다. 다가오는 여름, 무더위를 쫓기 위해 삼계탕과 같은 우리나라의 전통 보양식을 먹는 것도 좋지만, 다른 문화권의 보양식을 한번 먹어보는 것은 어떨까요?
◆ 더 자세히 알고 싶다면
1. Blue Origin (https://www.blueorigin.com/)
2. Space X (https://www.spacex.com/)
3. Moon Express (https://moonexpres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