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들어진 모범생들
2015년 ‘천재소녀 사건’이 잠시 세계를 떠들썩하게 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하버드대와 스탠포드대에 동시에 합격했다던 한국인 여학생이 언론의 주목을 받았었는데요, 이 여학생은 CEO 마크 저커버그와의 일화가 소개되면서 유명세를 탔습니다. 하버드와 스탠포드를 놓고 마지막 고민을 할 때 저커버그에게 이메일로 조언을 구했는데, 저커버그가 직접 전화를 걸어와 격려를 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내 이 소녀의 주장이 모두 거짓인 것으로 판명되어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켰습니다. 많은 의학 전문가들은 이 소녀에 대해 ‘리플리 증후군’이 의심된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자신이 꿈꾸는 허구의 세계를 진실이라고 믿으면서 거짓된 말과 행동을 반복하는 것을 ‘리플리 증후군’이라고 합니다. ‘리플리 증후군’은 미국 소설가 패트리샤 하이스미스의 소설 <재능 있는 리플리 씨>에서 유래했습니다. 소설 속 주인공 리플리는 부잣집 아들인 친구를 죽이고 자신이 그 친구인 것처럼 살아갑니다. 그는 시간이 지나면서 자신이 정말 그 친구라고 믿어버립니다. 리플리 증후군은 성취욕은 강한데 현실에서 이를 이룰 수 없는 사람이 지위나 신분 등을 거짓으로 꾸며내는 것을 말합니다. 거짓을 일삼다가 거짓을 진실로 믿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부모로부터 비롯되었든, 아이 스스로에게서 비롯되었든 과도한 성취욕은 이처럼 아이들을 병들게 만들기도 합니다.
우리가 소위 ‘모범생’이라고 말하는 학생들은 사회가 제시하는 룰에 잘 적응한, ‘착한아이’들입니다. 하지만 이런 착한 아이들은 정말로 자신이 원해서 ‘착한아이’, 모범생이 된 것일까요. 아니면 과도한 주변사람들의 기대와 성취에 대한 강박 속에서 ‘착한아이증후군’에 걸리고만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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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성도 사교육하는 시대
최근 교육계에서 인성교육의 중요성이 대두되고 정부에서 이를 제도적으로 강제하자 ‘인성 교육 지도사’와 같은 인성 관련 자격증이 우후죽순 생겨났습니다. 2008년 2개에 불과했던 인성 관련 민간자격증은 2014년 151개로 늘었고, 2015년엔 1년만에 253개로 증가했습니다. 이는 2015년 초 국회가 ‘인성교육진흥법’을 제정하고 정부가 대학 입시에서 인성 평가를 강화한다고 발표했기 때문인데요, 당시 이 사안에 대해 교육부는 “인성 관련 자격증이나 외부 활동은 학교생활기록부나 대입 자기소개서에 절대로 기입할 수 없다”며 “이 때문에 인성 관련 사교육을 받는 것은 대학 진학에 도움이 안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이런 교육부의 발언이 무색하게 강남 등의 ‘학생부 종합전형 대비’ 학원이나 ‘스피치 전문’ 학원 등에서는 인성면접을 교육 커리큘럼에 끼워넣고 이에 대한 강의를 진행하고 있다고 합니다. 대입에 관계된 요소라면 무엇하나 안심할 수 없는 부모들의 마음과, 그런 부모들의 불안감을 이용하는 학원의 상술이 인성마저도 사교육하는 시대를 만들어내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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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공된 아류, 모방하는 아이들
2012년 입시에서 연세대 시스템생물학과에 합격한 춘천고 차석호군의 내신은 전체 9등급 중 8등급이었습니다. 차군은 수학 실력은 떨어졌지만 어릴 때부터 곤충 연구에 빠져 채집을 하러 다니고 밤새워 관찰한 열정에 면접관들이 감동해 면접관들의 만장일치로 합격하게되었습니다. 당시 연세대가 처음 도입한 ‘창의 인재 전형’ 덕분이었습니다. ‘한국의 앙리 파브르를 꿈꾸는 학생’이라 불리며 연일 화제가 되고, 연세대의 창의 인재 전형은 ‘줄세우기식 입시 문화를 바꿀 혁신’으로 평가받았습니다. 하지만 연세대는 최근 ‘창의 인재 전형’의 정원을 10명으로 줄이는 안을 통과시켰는데요, 한 입학처 관계자는 이와 관련해 “‘창의 인재 전형’ 시행 후 이듬해 기존 합격생들의 특장점을 그대로 흉내 낸 지원자들이 속출했다”고 이야기 했습니다. 연세대 입학처의 한 교수는 “학교의 뜻은 기존 제도가 담지 못하는 학생들을 뽑자는 것인데 첫해를 제외한 2013학년도부터 사교육으로 만들어진 듯한 학생들의 지원이 몰렸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사교육에 의해 만들어진 아이들이 무더기로 해당 전형에 응시 하였던 것입니다. 이처럼 좋은 제도가 있어도 이를 이용하려는 이들의 욕심이 결국 그 제도를 유명무실하게 만들어 안타까움을 느끼게 합니다.
어른들의 과열된 ‘모범생 만들기’
2014년, 대학 입학사정관제 전형에 제출할 입시 서류를 조작한 학부모와 아들, 이들을 도운 교사가 검거됐습니다. 이들 때문에 해당 연도 입시에 지원한 다른 학생들은 부당하게 피해를 봤습니다. 학생을 더 좋은 학교에 보내기 위해 조작도 불사하는 것은 학부모 뿐만이 아닙니다. 지난해 9월에는 명문대 진학 가능성이 있는 학생들의 성적을 유지시키려고 이들의 생활기록부를 임의로 조작한 사립 고등학교 교장과 교사가 경찰에 적발 되기도 하였습니다. 더 좋은 학교, 더 좋은 성적, 더 좋은 스펙을 위해서 사교육도 모자라 사실을 조작하는 것도 서슴지 않는 것입니다. 이러한 과열된 교육열, 목적을 위해서는 적법하지 않은 일도 저지르는 세태는 분명 잘못된 풍토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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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국교육개발원이 성인남녀 2000명을 대상으로 온라인 설문조사를 실시해 15일 발간한 ‘2016 교육여론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현재 보다 강화돼야 할 교육내용에 대해서 초,중학교에서는 ‘인성교육’이 각각 47.1%, 39.0%로 가장 높게 나타났습니다. 하지만 정말로 아이들에게 올바른 인성교육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모든 것을 성과와 결과 위주로만 평가하려는 주변의 시선들이 먼저 완화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주변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만들어지는 아이들이 더 이상 늘어나서는 안 되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