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거리로 나선 미국 학생들…“총기 허용 이제 그만!”
▲ 사진출처 : Rux Centea on Unsplash
미국의 청소년들, 거리로 나서다
2018년 3월 14일, 미국 각지의 고등학생들은 말없이 교문을 벗어나 거리로 나서기 시작했습니다. 한 달 전인 2월 14일 미국 플로리다주 더글라스 고등학교에서 무차별 총격 사건으로 목숨을 잃은 17명의 학생들을 기억하고, 의회에 총기 규제 법안을 통과시키라는 목소리를 내기 위해서였습니다. 이 날, 학생들의 교실퇴장(school walkout)을 막은 학교도 있었지만 교사와 학부모들이 함께 시위에 참여한 학교가 더 많았다고 합니다.
‘이젠 그만(Enough Is Enough)’을 슬로건으로 내세운 학생들의 행진은 17명의 희생자를 기리는 의미에서 17분 동안 침묵 속에 진행됐습니다. 소셜미디어에는 #EnoughisEnough(이것으로 충분하다) #NeverAgian(더 이상은 안 된다) #MeNext(다음에 죽는 사람이 내가 될 수 있다) 등 해시태그를 단 관련 사진·영상들이 쏟아지며 행진에 참여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더글라스의 무차별 총격사건에서 살아남은 학생들이 주도한 ‘우리 생명을 위한 행진(March for Our Lives)’이라는 전국 캠페인의 시작입니다.
이 행진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가장 강경한 요구로는 ‘무기를 소장하고 휴대하는 국민의 권리는 침해될 수 없다’고 명기한 미국 수정헌법 2조를 폐지시킬 것, 이게 어렵다면 현재 대부분의 주에서 18세로 규정된 총기 구매 가능 연령을 21세로 높이고, 신분증 검사를 강화하고, 총기에 한 번에 장전할 수 있는 총알 수를 줄일 것 등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 사진출처 : Tim Mudd on Unsplash
베트남전 반대 시위 이후 최대 인원이 모였다, 왜?
더글러스 고교의 생존자 학생들은 열흘 후인 24일 또 한 차례 대규모 행진을 주도했습니다. 이날 시위에는 14일 소셜미디어에서 시위를 접한 사람들이 함께 참여해 화제가 되었습니다. 뉴욕타임스 등 미디어는 24일 10대들이 주도한 ‘총기 규제 강화 시위’가 미국 전역 800여 곳에서 열렸으며, 특히 수도 워싱턴 DC에는 주최 측 추산으로 80만 명이 운집해 1969년 베트남전 반대 시위 이후 최대 인원이 모인 것이라고 보도했습니다.
대학생들이 학생운동을 주도해온 미국에서 고교생들이 행진을 주도하는 것은 흔치 않은 일입니다. 캔자스대학 사회학과의 데이빗 파버 교수를 비롯한 총기난사 사건의 빈번한 타깃이 되는 피해자 그룹인 10대들이고, 더 이상 성인들의 손에 자신들의 생명을 맡길 수 없다는 절박한 공감대가 이들을 거리로 나서게 한다고 설명합니다.
실제로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의 사망통계 자료에 의하면 1999년부터 2016년까지 각종 총기 사건으로 희생된 청소년(18세 이하)는 2만 6000여명에 이릅니다. 해마다 1000명이 넘는 청소년이 총기 사건으로 희생된 셈입니다. 총기는 사람을 보호하는 방어 도구가 될 수도, 사람을 위협하는 공격 도구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청소년에게는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소유하기는 어려운 반면, 총기에 의해 희생되는 일은 빈번한 위험 도구입니다.
6분 20초, 세상에서 가장 길었던 시간
▲ 영상출처 : NOWTHIS
3월 24일 미국 워싱턴DC의 백악관 앞에 모인 총기규제 시위대 앞에서 더글러스 고교 총기난사 사건 생존자 에마 곤살레스는 “6분 20초. 그 시간 동안 내 친구 17명이 죽었고, 15명이 부상을 입었고, 더글러스 학생 모두의 삶이 바뀌었다”고 연설을 시작한 후 눈물을 흘리며 희생자를 일일이 호명한 후, 갑자기 연설을 멈췄습니다.
곤살레스가 침묵한 것은 전체 연설 시간을 더글라스 고등학교에서 총기 공격이 실제 진행된 시간인 ‘6분 20초’에 맞추기 위해서였습니다. 이후 곤살레스는 “내가 나온 지 6분 20초가 지났다. 공격자는 공격을 멈추고, 총을 버리고, 학생들에 뒤섞여 탈출한 후 체포 전 1시간 동안 거리를 돌아다녔다. 다른 누군가가 하기 전에 당신의 삶을 위해 싸우라”라고 말했습니다.
인권운동가 마틴 루터 킹의 손녀인 욜란다 르네 킹도 나섰습니다. 올해 9세를 맞이한 그는 “우리 할아버지는 내가 피부색으로 차별받지 않는 세상이라는 꿈이 있었다”라며 “그리고 그 꿈이 이루어진 지금 나는 총기 없는 세상이라는 꿈을 꾼다. 우리 세대는 총기를 규제하는 위대한 세대가 될 것이다”라고 할아버지의 명연설을 인용해 학생들에게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목소리를 낼 것을 강조했습니다.
이 날 행진은 백악관 뿐 아니라 LA, 휴스턴, 뉴욕 등 미국 전역에서 열렸습니다. 뉴욕 행진에 같은 반 학생들과 함께 참여한 벤자민과 엘리자의 인터뷰를 마지막으로 소개하며 이 글을 마칩니다. 그러나 “March For Our Lives” 행진에 참여하는 청소년들은 스스로의 운명을 어른에게 맡기지 않고 목소리를 내기 위해 참여하고 있습니다.
“저는 친구들에게 어린이도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말합니다. 어린이는 세상의 미래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목소리를 내는 것은 중요합니다. 어른들에게는 그들의 기회가 있었고, 이제는 우리가 일어설 때입니다.”
▲ 영상출처 : NOWTHIS
■ 더 자세히 알고 싶다면?
1. #MeNext 미국은 왜 총기규제를 망설일까?
2. “가장 끔찍한 6분 20초” 미국 뒤흔든 총기규제 시위
3. 마틴 루터 킹의 손녀 욜란다 르네 킹의 “Enough is Enough” 연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