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체인이 만들 새로운 세상
‘블록체인’이라는 단어 들어보셨나요? 요즘 신문이나 뉴스는 이 단어로 떠들썩합니다. 블록체인은 최근 가장 주목받고 있는 새로운 데이터 보안 기술을 일컫는 말이에요. 데이터를 주고받는 모든 사람이 하나의 중앙 서버에 접속하는 기존의 데이터 보안 기술과 달리 블록체인은 개인대개인(P2P) 네트워크를 통해 모든 참여자가 데이터를 주고받고, 그 내용을 독립적으로 저장할 수 있어서 데이터 전송 속도가 빨라질 뿐 아니라 위·변조가 불가능합니다.
위조‧변조가 불가능한 공공 거래 장부로 투명성과 신뢰도 확보
<가족오락관>에 나오는 ‘고요속의 외침’이라는 코너를 아시나요? 네다섯명의 참가자들이 시끄러운 노래가 나오는 헤드폰을 끼고 있다가 앞사람이 말하는 단어를 입모양으로 맞추는 게임인데요. 고작 네다섯명의 사람을 거칠 뿐인데 처음의 단어는 대부분 엉뚱한 단어로 바뀝니다. 정보가 여러 명의 중개자를 거치면서 변조되는 거지요.
블록체인의 가장 큰 장점은 위‧변조가 불가능하다는 점입니다. 블록체인은 거래 정보를 하나의 덩어리(블록)로 여깁니다. 이 덩어리들을 고리(체인)로 연결한 거래 장부를 블록체인이라고 하는 것이지요. 모든 장부에는 똑같은 내용이 기록되기 때문에 과거부터 현재까지 모든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여럿에게 기록이 남아있어서 한 명이 위조할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블록체인은 ‘공공 거래 장부’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오가는 정보와 거래기록이 투명하므로 당사자들의 완벽한 신뢰가 생기고, 신뢰를 보증하기 위한 중개자가 불필요해집니다.
불록체인은 ‘고요속의 외침’처럼 여러명을 거치며 내용이 바뀌는 일을 막을 수 있을 뿐 아니라, 중개자가 취하는 수수료도 절감되기 때문에 각광받고 있습니다. 가령 개인끼리 돈을 주고받을 때, 지금은 은행(중개자) 등 금융기관을 통해야 하지만 블록체인 체제에서는 은행 없이 거래가 가능해 수수료를 절감할 수 있게 되는 거지요.
블록체인은 당사자간 거래 뿐 아니라 중개자가 있는 다대다 관계에서 초래되는 복잡성 문제도 해결할 수 있는 대안으로 주목받습니다. 소비자와 생산자를 중개하는 여러 판매/유통 회사들은 블록체인을 통해 원하는 사람과 빠르게 정보를 공유할 수 있어 큰 관심을 보이고 있습니다.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주고받았는지 기록이 필요한 재화를 주고 받는 모든 분야에서 쓰일 수 있으니 결국 모든 경제활동에 적용가능하다고 볼 수 있겠죠? 아직까지는 비트코인 같은 금융 분야에서 주로 사용되고 있지만, 곧 사물인터넷(IoT)·헬스케어·게임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될 것으로 보입니다.
2.2초, 블록체인으로 월마트에서 파는 망고의 원산지를 추적하는 데 걸리는 시간
최근 미국에서는 투명성 부족으로 인해 사람의 목숨이 위태로워지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16개 주에서 53명에 달하는 사람들의 로메인 상추를 사먹고 대장균 감염으로 위독해졌던 사건입니다. 미국 정부는 이 상추 제품을 회수하려고 시도했으나 원산지가 애리조나 주 유마라는 것까지만 밝혀내고 어느 농장 상추인지는 찾아낼 수 없었다고 해요. 어느 농장에서 재배된 상추가 어떤 공급업체를 통해 유통됐는지, 그 경로를 끝끝내 파악하지 못한 미국 질병 통제 예방 센터(CDC)는 원산지를 확인할 수 없는 모든 로메인 상추를 폐기 처분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막대한 경제적 손실이었지요.
미국의 슈퍼마켓 체인인 월마트는 이런 상황을 방지하기 위해 IT기업인 IBM과 함께 블록체인 기술을 토대로 구축한 야채 및 돈육 추적 시스템을 개발해 이미 현장에서 사용하고 있습니다. 바로 월마트에 음식을 납품하는 전세계의 1만 2천개의 소매업체와 수많은 공급업체가 판매하는 채소와 육류, 과일 등의 원산지를 샅샅이 추적하는 방법을 찾는 겁니다. 월마트의 식품담당자 말로는 현재 기술로 분산형 전자 장부에 입력한 망고 제품의 원산지를 추적하면 불과 2.2초 밖에 걸리지 않는다고 해요.
한 사람이 월마트에서 산 상한 빵을 먹고 배탈이 났다고 가정해볼게요. 예전 같으면 빵의 유통 과정 중 어디서 문제가 생겼는지 파악하기까지 며칠이 걸렸을 거예요. 빵을 굽는 데 필요한 재료가 수십가지인데 확실히 찾을 수 있다는 보장도 없고요. 하지만 IBM의 블록체인 기반 시스템을 활용하면 밀가루, 버터, 소금, 설탕 등 모든 재료가 어떻게 유통됐는지를 수초 만에 파악가능하므로 분석까지 몇 분 만에 상한 빵의 원인을 찾을 수 있습니다. 공급·검수·유통 과정의 정보가 모두 블록체인으로 동시에 관리되기 때문이죠. 월마트는 전체 식료품 공급망에 블록체인을 적용할 계획을 세우고 있습니다.
같은 가치를 지향하는 사람들을 묶어 경제적 이익을 창출
반영구적으로 기록이 남는 것도 블록체인의 큰 장점입니다. 중앙서버가 모든 정보를 보관하는 기존의 정보 교환방식과 달리, 블록체인은 개별 컴퓨터가 각각 정보를 저장하기 때문에, 한쪽이 정보를 삭제해도 같은 정보를 가진 다른 사람을 찾아서 정보를 되찾을 수 있습니다. 또 같은 주제에 관한 정보를 주고받는 개인들을 연결해주는 과정에서, 관심사나 가치관이 같은 사람들을 묶어주는 커뮤니티 역할도 하게 됩니다. 이렇게 서로 무엇이 중요한지에 대한 합의가 이루어진 사람들끼리 원화나 달러 등의 법정화폐가 아니라 이 커뮤니티 안에서만 주고받는 가상화폐를 만들어 기존 시장과 다른 재화를 주고받는 사례도 늘어나고 있습니다. ‘스팀잇’이라는 블로그 커뮤니티는 수년 전부터 글을 쓰는 사람에게 가상통화를 지급하고 있습니다. 서울시 노원구는 블록체인 기술을 이용해 자원활동이나 재능기부로 번 지역화폐를 주차장, 서점, 미용실 등에서 쓸 수 있는 ‘노원(NW)’을 운영하고 있고요.
이처럼 블록체인을 통한 거래가 활성화되면 집안일이나 노인 돌봄, 글쓰기나 만들기 같은 기존에 경제적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했던 것들이 경제적으로 평가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이상적인 전망도 나오고 있습니다.
가상화폐 소모 전력, 올해 말이면 전 세계 0.5%에 달할 것
다만 대부분의 블록체인은 아직 실험단계이기 때문에 거래를 만들어내기 위해 참여자(컴퓨터)들을 필요로 합니다. 적절한 보상이 없다면, 참여자들이 모이지 않겠죠. 참여자들에 대한 보상 수단이 가상화폐입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비트코인인데요. 비트코인은 블록체인에 참여해 암호를 푼 컴퓨터에 대한 ‘보상’으로 화폐를 지급합니다. 코인을 받기 위해 참여자가 몰리고, 그들이 서로 연결돼 견고한 사슬(체인)을 형성하는 겁니다. 이 과정에서 쓰이는 전력량이 지구 온난화를 위협할 정도로 커져 기후변화 대응에 걸림돌이 될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습니다.
글로벌 컨설팅회사인 PwC의 금융 및 블록체인 전문가 알렉스 드 브리의 연구에 따르면, 올해 말 비트코인 네트워크로 인해 사용되는 전력은 약 7.7GW(기가와트)가 될 것이며 이는 오스트리아에서 사용되는 전체 전력과 비슷합니다. 전 세계에서 사용되는 전력의 0.5%에 달할 것이라고 예측됩니다.
또한 블록체인은 아직은 개발단계이기 때문에 거래량이 많아지면 커지는 용량을 감당하기 어렵고, 거래 인증에 속도가 느려지는 점도 단점으로 꼽힙니다. 해킹 등의 사고로 문제가 생길 경우 누구에게 책임을 물을 수도 없고 폐쇄할 수도 없다는 치명적인 문제가 있습니다. 블록체인이 금융권에 가장 활발히 쓰일 것으로 예측되면서도 정작 실제 도입은 월마트처럼 금융 외 분야에서 더 빠르게 도입되고 있는 이유도 이런 문제들 때문입니다. 단점들을 해결하기 위해 시스템의 투명성을 활용하면서도 제도적으로 사용자의 동의를 통해 누가 계약 당사자인지 알 수 있는 법적 계약을 따로 맺는 프라이빗 블록체인 등의 방식이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장점도 단점도 많은 신기술, 블록체인은 인류의 미래를 어떻게 바꾸게 될까요? 블록체인은 아직 도입단계라 그 발전방향이 무궁무진합니다. 세상을 더 투명하고 자신이 가치있게 생각하는 것들을 추구할 수 있게 만드는 ‘선한 기술’이 될지, 아니면 지구온난화를 심화시키고 서로 책임을 미루게 하는 ‘악한 기술’가 될 지는 우리에게 달려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