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 전수’에서 ‘역량 강화’로…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AI인 시대를 대비하는 대학 교육의 변화
첫째도 AI, 둘째도 AI, 셋째도 AI…
그렇다면 인간은 뭘 해야 할까?
지난 여름 한국을 방문한 세계적인 혁신기업가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은 문재인 대통령을 만나 “한국이 미래사회에 대비하려면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AI에 집중해야 한다”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AI가 인류 역사상 최대 수준의 혁명을 불러올 것”이라며 앞으로 AI가 산업 전반을 바꿀 것이라는 예측과 함께요.
실제로 AI는 많은 양의 정보를 짧은 시간 내에 스스로 학습하고 처리하며 인간 두뇌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효율성을 보여줄 것으로 전망됩니다. AI가 인류의 두뇌를 대신하게 될 시대에 인간은 무엇을 해야 할까요?
최근 국내외 교육계의 화두는 ‘인적자원의 활용가치를 어떻게 새로 정립하느냐’입니다. 특히 당장 사회에 필요한 인재를 배출해내야 하는 대학교들은 발등에 불이 떨어진 상태인데요. 세상에 필요한 인재를 배출하기 위해 대학교들은 어떻게 교육과정을 바꾸고 있는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대학의 변화 1: ‘지식’이 아닌 ‘역량’을 키우기 위한 교과과정
사회문제가 생겨나는 속도가 빨라지고 형태도 복잡해지고 있다.
주입식 교육으로 배운 단편적인 지식으로는 눈앞에 닥친 문제들을 해결하기 어려워졌다.
자기주도적으로 사회문제를 찾아 해결하고 가치를 만들어 내는 연습이 학생들에게 필요하다.
그게 사회혁신 교육이다.
-장용석 연세대 고등교육혁신원 부원장
AI가 인류의 두뇌를 대신하게 될 시대에 인간은 무엇을 해야 할까요? 세계의 대학들은 이 화두에 대한 답을 ‘지식을 활용하는 역량’이라고 내리고, 역량을 길러주기 위한 실험을 기존의 지식전수형 수업에 접목하고 있습니다.
‘역량’이라는 개념이 교육과정에 도입되면서 대학교에서도 초중고등학교만큼이나 비교과활동이 강조되는 추세입니다. 전공과 교양 과목으로 나뉘어진 학과 체계로 볼 수 있듯 대학은 전통적으로 각 학문 분야에서 확립된 지식의 체계를 가르쳐 왔다고 할 수 있는 공간입니다. 이런 대학이 최근 지식전수기관에서 역량전수기관으로 탈바꿈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연세대학교는 2018년 “대학과 사회의 ‘연결 고리’ 역할을 하겠다”라며 고등교육혁신원을 설립한 후 2019년 1학기까지 150여 개의 교양 및 전공과목을 ‘사회혁신역량 교과목’으로 변신시켰습니다. 과목을 새로 만든 게 아니라, 기존에는 지식만을 평가하던 전공과목의 마지막 리포트를 해당 수업과 관련된 사회문제 해결 프로젝트로 대체하는 방식 등 기존 교과목에 사회혁신을 접목시키는 전략을 취하며 교과과정 전체를 지식과 역량의 조화를 이루도록 하는 커리큘럼으로 변화시킨 겁니다.
이는 효과적인 교육기법이기도 하지만, 보다 더 큰 의미가 있습니다. 문제 해결 능력과 효능감, 협업능력과 책임감 같은 지식을 활용하기 위한 역량 뿐 아니라 공감과 공공성 등 시민적·공적 덕성을 함께 길러준다는 점입니다.
세계 대학교육의 변화 2: 전 세계에 번지는 대학발 ‘혁신’
미국과 유럽, 중국과 일본 등 세계의 대학들은 실제 사회에서 쓸 수 있는 역량을 가르치기 위해 ‘사회혁신가(Social Innovator)’ 양성을 미션으로 내걸고 있습니다. 이 학교들은 서비스 러닝(습득한 지식을 활용하여 봉사함으로써 학습을 촉진시키는 활동), 캡스톤 디자인(전공 지식을 바탕으로 산업체(또는 지역사회)가 필요로 하는 주제로 과제를 스스로 설계, 기획, 제작하여 수행하는 실무형 융복합 인재양성 프로그램), 문제기반 교육(PBL, Problem Based Learning) 등 다양한 이름으로 지역참여를 통해 학생들에게 역량을 길러주는 교육을 시도합니다.
이런 사회혁신 프로그램들은 ‘역량 연습’ 차원을 떠나 실제로 세상을 바꾸고 있기도 합니다. 미국에서는 실리콘밸리가 최근 사회혁신의 새로운 메카로 떠오르는데요. 이 중심에는 실리콘밸리 중심지와 차로 10여분 내외인 스탠포드대학교가 있습니다. 스탠포드는 2003년부터 학술계간지 ‘스탠퍼드 사회혁신리뷰(SSIR)’를 발간함으로써 세계에서 이 분야 지식축적과 정보교류의 중심이 되어 왔는데요.
이와 함께 경영대학에 ‘사회혁신 센터’를 설립하고 다양한 사람들 간의 협업, 실제 프로젝트의 해결을 강조하는 디자인 씽킹을 활용한 강좌와 연관된 학위과정을 운영하며 사회혁신에 관한 연구활동을 선도해오고 있습니다. 스탠포드 사회혁신센터에서 시작되는 수많은 아이디어들이 이미 기술혁신을 주도한 경험이 있는 실리콘벨리의 벤처기업가 그룹의 경영능력과 자본력을 통해 세계를 바꿔나가고 있는 거지요.
이런 흐름은 해외 뿐 아니라 한국에서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동국대학교의 ‘캠퍼스 리빙랩’은 지자체도 모르던 문제점을 찾아내 상하수도 관련 조례를 바꾸기도 했습니다. 다른 지자체의 경우에는 건물에 설치된 상수도 파이프 직경에 따라 상하수도 요금 단가의 기준을 다르게 적용하는데, 고양시는 그동안 하나의 상하수도 파이프 직경 크기를 기준으로 상수도 요금을 부과해왔습니다. 이 기준에 따르면 작은 상수도관을 쓴 곳은 요금이 적게 나오고, 큰 상수도관을 쓴 곳은 요금이 좀 더 많이 나오게 됩니다. 주민도 고양시도 몰랐던 사안이었습니다.
동국대 학생들은 다른 지자체는 이 조항이 다 들어있는데 고양시에는 왜 안 들어 있는지 궁금해하며 고양시 조례 확인을 의뢰했고, 시는 문제가 있다고 판단하고 개선을 했습니다. 현재는 중구청의 지원을 받아 이처럼 지역과 밀착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애쓰고 있습니다.
세계 대학교육의 변화 3. 지역밀착형 커리큘럼
미국의 대학교육제도 중 가장 일반화된 것은 커뮤니티 칼리지(Community College)입니다. 과거 커뮤니티 칼리지는 2년제 교육과정으로, 어느 지역에나 있고, 고등학교 졸업장만 있으면 누구나 입학할 수 있으며 다른 대학교육기관에서도 인정해주는 학점을 준다는 점에서 4년제 대학으로 편입하기 위한 ‘거쳐가는 교육기관’이라는 부정적 인식이 컸는데요. 최근에는 IT산업이 발달한 실리콘밸리의 커뮤니티칼리지에는 컴퓨터 관련 수업을 많이 개설되고, 보스턴이나 필라델피아처럼 의료 산업이 발달한 도시에서는 간호학 등 관련 수업을 많이 개설되는 등 각 기업이 필요로 하는 교육과정을 반영한 지역사회 밀착 커리큘럼으로 ‘지역에 기반을 둔 평생학습기관’이자 ‘일과 학습을 병행할 수 있는 학습기관’으로 변모하고 있습니다. 직업 교육은 물론 문화와 예술, 경제, 기술 등 무엇이든 배울 수 있고, 역량에 따라서는 일과 학습을 병행하는 것도 충분히 가능한 문턱 없는 학교인 셈입니다.
세계 대학교육의 변화 4. 글로벌화 강화
자국에 한정되지 않고, 다른 국가의 대학으로 연구자와 학생이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는 시대가 되며 대학의 국제경쟁력 강화도 새로운 과제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특히 초고령화가 진행 중인 일본의 대학들은 인구 감소로 입학자가 줄자 해외 학생들을 유치하기 위해 국립대학의 국제경쟁력 강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데요. 일본 최고의 명문대인 도쿄대학의 경우 프린스턴대학, 호주국립대학, 캠브리지대학, 북경대학, 스위스연방공과대학, 서울대학교 등 세계의 명문대학교들과 전략적 파트너십을 구축하여 세계 각국과 연구교류 프로젝트를 꾸준히 추진하는 방식으로 글로벌화를 꾀합니다. 파트녀교와의 프로젝트를 위해 학부생 및 대학원생을 파견받고 보내며 학적은 도쿄대에 있지만 세계에서 교육을 진행하는 겁니다.
이런 ‘글로벌 연계’에서 나아가 아예 물리적 캠퍼스를 없애고 세계의 대도시를 옮겨다니며 수업을 진행하는 학교도 있습니다. 이전에 주니어앰배서더에서도 소개한 바 있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본부를 둔 ‘미네르바 스쿨’은 교육혁신 대학으로 전 세계에서 주목받고 있는데요.(참고: ‘혁신’을 꿈꾸는 미래 학교, 미네르바 스쿨(Minerva School)) 이 대학은 강의실, 도서관, 학생식당, 교수연구실, 운동장이 아예 없습니다. 이 대학에 입학한 학생들은 미국(샌프란시스코), 영국(런던), 독일(베를린), 인도(하이데라바드), 대만(타이베이), 한국(서울) 등 세계 7개국 도시에서 3∼6개월 동안 머물며 나라별 다양한 문화를 체험하며 학기를 보냅니다. 세계 각국 도시가 캠퍼스인 셈이지요. 학생들은 각 도시 한 가운데 있는 기숙사에서 생활하며 현지 기업과 공공기관·단체 등과 공동 프로젝트에 참여해 과제를 해결하는 방식을 배웁니다.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AI인 시대를 대비하는 대학 교육의 변화
과거가 ‘지식정보사회’였다면, 4차 산업혁명 이후의 사회는 ‘지능정보사회’라고 예측됩니다. 지식과 경험 자체가 중요했던 과거에는 한 분야·직장에 오래 몸 담으며 연차가 쌓이면 더 많은 지식을 갖고 업무도 잘하게 되는 게 당연했는데요. 지식의 양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많아졌고, 비즈니스 환경도 계속 변화하는 지금에는 과거의 지식과 경험이 이전만큼 힘을 발휘하지 못하게 된 것이 사실입니다.
2001년 OECD가 발표한 ‘미래학교 시나리오’는 미래의 학교가 지식 전수 기관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사회의 중심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예측한 바 있습니다. 그로부터 20년이 지나고 대학에서 배우는 지식을 손쉽게 접근할 수 있는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이한 대학교는 지식보다 지식을 활용하는 역량을 키우는 곳으로 변모하고 있습니다.
■ 더 자세히 알고 싶다면
1. Center for Social Innovation – Stanford Universit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