컵이라고 다 같은 컵이 아닙니다! ‘더 나은 컵’을 10년째 만들고 있는 청소년 CEO
올해로 십 년째 더 좋은 컵을 만들고 있는 미국의 청소년 CEO, 릴리 본(Lily Born). “10년 차 CEO인데 10대라고?”라고 생각하는 독자분들도 있으실 텐데요. 네 맞습니다! 릴리는 9살 때 만든 발명품으로 사업을 시작한 청소년 창업가입니다.
릴리의 회사 ‘imageroo’의 주력상품은 그녀가 직접 디자인한 ‘캥커루 컵'(Kangaroo Cup)입니다. 두 다리와 꼬리로 서 있는 캥거루의 모습에서 떠올린 디자인입니다. 두 손으로 잡고 마실 수도 있고, 다른 사람이 함께 잡아 마시는 걸 도와줄 수도 있습니다. 무엇보다 움직임이 불편한 사람들이 떨리는 손으로 컵을 내려놓아도 엎어지지 않아 노약자용 컵으로 인기가 좋습니다.
할아버지·할머니를 돕기 위해 발명한 세 발 달린 컵
사진 출처: 릴리 본의 트위터
릴리가 8살 때, 할아버지가 파킨슨 병에 걸렸습니다. 파킨슨병은 뇌에서 몸이 원하는 대로 정교하게 움직일 수 있도록 하는 도파민계 신경이 파괴되는 질병입니다. 파킨슨병에 걸린 할아버지는 우유나 주스를 마시고 컵을 내려놓다가 손에서 놓쳐 떨어뜨리기 일쑤였고, 할머니는 할아버지가 쏟은 음식물들을 자꾸 치워야 했습니다. ‘손에서 놓쳐 똑바로 떨어지는 컵을 만들 수 없을까? 그럼 할머니도 덜 고생하시고, 할아버지도 할머니한테 덜 미안하실텐데…’
릴리는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불편을 도와드릴 수 있는 해결책을 찾았습니다. 바로 손잡이 겸 다리 역할을 하는 안정적인 받침대를 만드는 거였습니다. 그녀는 녹였다가 굳힐 수 있는 플라스틱을 사용하여 할아버지가 잡고 내려놓기 편한 플라스틱 컵을 만들었습니다.
릴리가 처음 만든 캥거루컵의 도안 및 완성본 / 사진출처: cusp 2015
“우리 손녀 릴리가 만들어준 컵이 세상 최고야!!”
위보다 아래가 좁아서 조금만 각도를 잘못 내려놓아도 내용물이 쏟아지던 일반적인 컵들과는 달리 릴리가 만든 컵은 기저면이 넓고 다리부터 안전하게 착지하기 때문에 내용물을 쏟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할아버지가 혼자 들기 무거우면 릴리나 할머니가 옆에서 다른 손잡이로 함께 잡아줄 수도 있었지요. “세상에 이렇게 편한 컵이 있다니!”덕분에 할아버지가 음료를 드실 때마다 혹시 흘리진 않을까 옆에서 지켜봐야 했던 할머니의 일도 훨씬 줄어들었습니다.
릴리의 할아버지는 릴리가 캥거루컵을 만들어 선물한 이후로 다른 그릇은 쳐다도 보지 않으셨습니다. 릴리가 몇 번이나 물어보았는데 ‘손녀가 준 선물이라서가 아니고, 다른 그릇들에 비해 훨씬 편리해서’라고 말해서 CEO로서는 뿌듯하지만, 손녀로서는 오히려 서운할 지경이었다나요. 하지만, 작은 디자인 변화 하나가 가져온 할아버지의 삶의 변화를 보고 릴리는 이 컵을 더 많은 사람들이 쓰기를 바라기 시작했습니다.
“더 많은 사람들이 편리한 삶을 살게 하기 위해”
릴리는 이모를 따라 그릇을 만드는 공방으로 도자 수업을 다니며 그릇을 직접 만드는 법을 배우고 진흙, 3D프린터 등을 통해 여러개의 시제품을 만들어보기 시작했습니다. 여러 번 고민을 거듭한 결과 어느정도 디자인이 나온 다음에는 더 저렴한 가격에 컵을 공급하기 위해 공장들을 알아보기 시작했습니다. 가격이 싸야 더 많은 사람들이 컵을 사고, 편리해질 수 있을테니까요. 미국 동부에 사는 릴리가 공장을 알아보기 위해 중국까지 다녀왔다고 하니 꼬마 CEO의 각오가 남달랐죠?
이 캠페인은 단지 제품을 생산하려는 게 아닙니다.
모든 부모와 아이들에게 상상이 현실이 될 수도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려는 것입니다.
– 릴리의 아버지가 첫 캥거루컵 펀딩시 소셜 펀딩 사이트 킥스타터의 소개글에 적은 메시지
릴리는 오늘도 팀원들과 함께 캥거루컵을 개발 중입니다. 좀더 안정적이고, 튼튼한 컵을 만들기 위해서요. 처음에는 움직임이 불편한 할아버지를 돕기 위해 고안되었지만, 이제 이 컵은 어린이나 움직임이 불편한 사람만을 위한 컵이 아닙니다. 모두가 쓰기에 더 편리한 컵이지요. 3개의 다리를 가진 이 컵은 안정적일 뿐 아니라, 쓰지 않을 때는 여러개를 쌓아 공간을 절약합니다. 컵이 떠있는 이유는 내려놓을 때 다리부터 바닥에 닿아 옆으로 기울어지지 않게, 또 차갑거나 뜨거운 것이 담겨있을 때 바닥에 물방울이나 자국을 남기지 않기 위해서고요.
릴리가 만든 캥거루 컵은 ‘혁신’이라는 게 꼭 어렵고 획기적인 발명일 필요는 없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좀더 안정적인 플라스틱 캥커루컵처럼 간단하지만 독창적인 발명도 얼마든지 존재할 수 있습니다.
이 사업을 시작할 때 저는 수줍음 많은 어린아이였어요. 하지만 지금은 압니다. 저는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걸요. 제가 하는 일이 사람을 돕는다는 걸 알기 때문에 저는 오늘도 세상을 더좋게 만들 무언가를 발명하고 있습니다. 캥거루컵은 시작일 뿐입니다.
– 릴리 본
다른 회사들의 홈페이지와는 다르게, Imageroo의 홈페이지에는 릴리가 발명에 사용하기 위해 만든 가이드북이 공개되어 있습니다. 모두가 편리하고 행복해지는 방법을 고민하기 위해 머리를 맞대면 세상은 좋아질 수 있다는 그녀의 믿음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