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들의 기후행동으로 변화하는 세계
지난 2월 17일, 세계 최대 부호이자 e커머스 기업 아마존의 창업자 겸 최고경영자(CEO)인 제프 베조스가 기후 변화에 더욱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100억 달러 규모 지구펀드를 조성한다고 밝혔습니다. 그는 환경을 보호하고 생태계 파괴의 주범인 이산화탄소 배출을 최소화하는데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도록 이 분야에서 활동하는 과학자나 환경 운동가, 비영리기관(NGO)에 자금을 지원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기후 변화는 지구에 가장 큰 위협이다.
기존의 방식과 함께 새로운 방법을 찾아 이를 차단해야 한다.
제프 베조스 아마존 최고 경영자
지난해 아마존은 2040년까지 탄소 배출량을 ‘제로(0)’로 만들겠다고 선언했습니다. 동시에 현재 40% 수준인 재생 가능한 에너지 비율을 2024년까지 80%로 올리고 2030년에는 이를 100%로 대체할 예정입니다. 이번 지구 펀드 조성은 아마존과는 별도로 제프 베조스 CEO가 개인 차원에서 진행하는 것인데요, 점차 기후변화로 인한 지구의 위기가 눈앞으로 다가오고 있는 현 시점에서 노블리스 오블리주의 효시로 남을 결정이 될 것 같습니다.
출처 : Jeff Bezos 인스타그램
변화하는 세계 언론들
기후변화에 대한 전 세계적인 관심도가 높아지자 세계의 주요 언론들의 스탠스도 변화하고 있습니다. 영국의 진보언론 <가디언>은 지난 1월 말 석유, 석탄, 가스 등 화석연료 기업의 광고를 싣지 않겠다고 선언했습니다. 2030년까지 회사가 ‘탄소중립'(배출한 만큼 흡수해 실질 배출량을 0으로 만드는 것)을 달성한다는 목표도 함께 밝혔습니다. <가디언>은 독자의 신뢰에 바탕을 둔 후원제에 힘입어 온라인 뉴스 유료화 없이 지난해 약간의 흑자를 냈지만, 화석연료 기업 광고 중단이 결코 쉬운 결정은 아니었습니다. 약 8억파운드(약 1조 2300억원)의 자산을 운용하고 있는 <가디언>의 지주회사 스콧트러스트 재단은 이미 2015년부터 화석연료 기업에 대한 투자를 중단했습니다.
보도에서도 <가디언>은 9명의 기자를 배치해 기후변화 섹션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5월에는 기사 작성의 지침인 스타일북을 개정해, 기후변화(Climate Change)란 말 대신 ‘기후 위기(Climate Emergency)’, 지구 온난화(Global Warming) 대신 ‘지구가열화(Global Heating)’이란 단어를 쓰겠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시민들에게 기후 변화가 실질적인 위기 국면에 닿아 있다는 것을 더 직접적으로 전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이라고 할 수 있지요.
미국 뉴스채널 <CNN>은 지난해 9월, 10명의 미국 대통령 선거 민주당 예비주자를 차례로 불러 기후변화 정책 간담회를 열고, 7시간에 걸쳐 중계했습니다. <CNN>은 관련 기사에서 여론조사 결과 유권자가 건강보험이나 총기규제보다 기후변화를 더 중요한 이슈로 인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기후변화가 2020년 대선의 주요 이슈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이러한 언론의 인식 변화는 기후변화에 대한 협업으로 이어졌고, 지난해 4월 세계 주요 신문, 방송, 통신, 잡지사는 ‘커버링 클라이밋 나우’라는 공동전선을 구축했습니다. 미주의 <불룸버그>, <시비에서 뉴스>, <로이터> 등과 아랍의 <알자지라>, 일본의 <아사히신문>을 포함해 참여 언론사가 현재 400여곳에 이르는데요, 이들의 영향을 받는 독자가 10억명에 이른다고 이 단체는 밝혔습니다.
출처 : Covering Climate Now 홈페이지
사실 기후변화 보도는 과학적인 외양과는 달리 정치·경제적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맞붙는 영역입니다. 1990년대부터 미국과 유럽의 큰 정유, 가스, 석탄회사들이 보수 연구소에 자금을 지원하고, 이곳에서 기후변화를 부인하는 연구 결과가 나와 기후변화는 논쟁적인 사안이 되었습니다. 기후변화 ‘회의론자’로 불리는 이들의 영향을 받아 아직도 미국인의 38% 가량이 기후변화가 인간이 배출한 온실가스 때문이란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고 있습니다. 관련된 과학자의 97%가 기후변화가 인간의 책임이라는 데 의견 일치를 보이는 것과는 대조적이지요. 이렇게 된 데에는 사실 언론의 책임이 큽니다. 영국 공영방송 <BBC>는 2018년 10월 보도국에 보낸 편지에서 “우리는 그동안 기후변화 보도에서 너무 많은 잘못을 범했다”고 후회하며 “노골적으로 기후변화를 부인하는 사람을 불편부당의 원칙을 지키기 위해 뉴스에 등장시킬 필요는 없다”고 밝혔습니다.
우리는 그동안 기후변화 보도에서 너무 많은 잘못을 범했다
영국 BBC 의 보도국에 보낸 편지 中
적극적인 행동에 나서는 시민들
기후변화가 국민의 생명과 복지에 미칠 위협을 고려하면
네덜란드 정부는 이산화탄소를 감축할 의무가 있다
네덜란드 대법원 판결 中
기후변화로 인한 위기에 더욱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있는 것은 정부가 아닌 시민들입니다. 사실 시민들의 이러한 변화가 기업인들과 언론의 변화도 이끌어낸 원동력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은데요. 지난해 12월 20일 환경단체 우르헨다(Urhenda)재단과 시민 886명이 네덜란드 정부를 대상으로 낸 민사소송에서 네덜란드 대법원은 “202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1990년보다 25% 감축하라”고 판결하면서 최종적으로 시민들의 손을 들어주었습니다. 이 판결은 전 세계에서 ‘정부의 기후변화 대응책임’을 법적으로 물은 첫 판결이기도 합니다. 해당 대법원의 판결은 전 세계에서 진행중이거나 진행 예정인 1,000여 건의 기후변화 관련 소송에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입니다.
‘우르헨다 소송’으로 알려진 이 소송이 시작된 것은 지난 2013년입니다. 1심 판결은 2015년, 2심 판결은 2018년에 이루어졌고 해당 판결에서 모두 “2020년까지 1990년 배출량의 25%를 감축하라”는 판결을 받았습니다. 해마다 기후변화 협상 테이블에서 네덜란드 정부가 “기후변화의 심각성을 알고 있다”고 밝힌 것이 그대로 증거가 되었습니다. 소송을 이끈 우르헨다 재단의 데니스 반 베르켈 변호사는 “정부가 해마다 보고서에 ‘기후변화는 위험하고, 뭔가 행동이 필요하다’고 썼고, 행동하는 게 정부 책임인 것도 알고 있었는데 행동은 하나도 하지 않았다”고 전했습니다.
국내에서도 청소년기후행동(舊 청소년기후소송단)을 중심으로 한 시민사회에서 정부를 대상으로 기후소송을 준비중입니다. 지난해 9월 21일 기후변화 정상회담에 앞서 국내에서는 환경운동연합의 주도로 기후 위기 비상행동 시위를 진행하기도 하였습니다. 해당 집회는 전 세계 180개 나라에서 열린 기후위기 항의 시위의 일환으로 열렸으며 한국에 앞서 호주에서는 30만명이, 독일에서는 150만명 등이 거리로 쏟아져나와 시위에 동참했습니다. 한국의 서울 집회에는 주최측 추산 4,000명 정도가 이 시위에 참여했지요. 국내에서는 처음 있는 대규모의 기후정의 운동이었습니다. 그리고 현재에 이르러 기후 위기에 대한 시민들의 인식은 더욱 확산되고 광주에서는 지난 2월 2일 ‘기후위기에 응답하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광주기후위기비상행동 준비위원회가 ‘광주시민선포식’을 개최하기도 했습니다. 전국적으로 기후위기에 대한 대응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으며, 교육계와 지자체 등에서 성명을 발표하며 정부의 대응을 촉구하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습니다.
출처 : Global Climate Strike 홈페이지
시민들의 가치관의 변화가 기업과 사회를 변화시키다
지난 2월 14일은 밸런타인데이였습니다. 하지만 이날 세계에서는 지구 곳곳의 청소년들이 기후변화 시위에 동참한 날이기도 합니다. 스웨덴의 청소년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가 이끄는 기후변화 대응단체 ‘미래를 위한 금요일(Fridays for Future)’이 학생들에게 일주일에 하루, 금요일에 학교에 가는 대신 기후변화에 대해 생각하자고 독려하는 가운데, 마침 올해 밸런타인데이는 금요일이었습니다. 동시에 이 날은 영국 전역에서 기후변화 시위가 일어난 지 1년을 기념하는 날이기도 했습니다. 이로 인해 런던뿐만 아니라 더럼, 글래스고, 브라이튼 등 영국 각지에서 춥고 비가 오는 궂은 날씨에도 시위대가 ‘기후정의를 원한다”고 외치며 거리를 행진했습니다. 스톡홀름에서 열린 시위에 참가한 그레타 툰베리는 <가디언>에 이날 세계 2천개 도시에서 시위가 계획됐고, 향후 더 큰 시위가 예정돼 있다고 밝혔습니다. 인도에서는 시위대가 정부의 아라발리산맥 일대 벌목 계획을 규탄했고, 호주 시드니에서는 최악의 산불에 대한 정부의 무능한 대응을 성토하는 목소리가 울려퍼졌습니다. 아프리카 르완다에서도 처음으로 시위가 열렸습니다. 시위 참가자들은 “르완다는 기후를 지킨다”는 팻말을 들고 있는 자신들의 모습을 트위터에 올렸습니다.
기후 위기에 맞서 행동하는 시민들은 미래 세대를 살아갈 청소년들만이 아닙니다. 이번에 ‘지구 펀드’를 출범하기로 한 제프 배조스가 대표로 있는 아마존에는 ‘기후 정의를 요구하는 아마존 직원들’이라는 단체가 있습니다. 이들은 지난해 말 수천명의 직원 서명과 함께 재생에너지 100% 확보를 요구하는 공개 서한을 회사 측에 보냈으며, 몇 개월 뒤 아마존은 2030년까지 100% 재생에너지를 약속했습니다. 기후 대응에 대한 아마존의 태도 변화에는 이러한 내부적인 성찰의 목소리와 이를 위해 노력한 직원들이 있었던 것입니다. 기업의 내부에서 기후 변화 대응을 촉구하는 목소리를 내는 것은 아마존 뿐만이 아닙니다.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HP, 월마트 등 고급 인력 수요가 많은 기술업체 중심으로 환경 정책에 대한 회사 차원의 대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구글과 마이크로소프트 역시 최근 직원들의 환경 관련 조치 요구에 따라 몇가지 환경 공약을 내놓았습니다. 기후 변화와 관련한 직원들의 직접적인 요구는 기업의 사회적·정치적 위치가 중요해지면서 더욱 두드러지는 모습입니다.
어디든 취업해서 돈만 많이 벌라고 요구하는 시대는 이미 지나갔다.
대학 캠퍼스를 방문하는 고용주들들로부터 가장 많이 듣는 질문 중 하나는
‘무엇을 위해 사느냐?’다.
제이슨 윙가드 콜롬비아 대학 전문학부 학장
최근 외국계 로펌인 허버트 스미스 프리힐즈가 375개 글로벌 기업을 대상으로 설문한 결과 5개 기업 중 4개는 앞으로 기후 변화와 관련한 직원들의 요구 활동이 증가할 것으로 내다봤다고 합니다. 이 같은 전망은 직원들이 직장을 단순히 생계비를 조달하기 위한 곳이라는 인식에 그치지 않고 사회적인 역할을 기대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는데요, 로펌의 런던 소재 파트너인 실크 골드버그는 “많은 직원들이 직장을 사회적 이슈를 형성하는 곳으로 생각하고 있다”면서, “그들은 고용주들이 자신들의 가치를 드러내고 유지하는데 나서줄 것을 요구한다”고 말했습니다.
독일에 기반을 둔 국제 아파트임대플랫폼 네스트픽(Nestpick.com)은 최근 세계 주요 도시의 30년 후 기온 변동과 물 부족, 해수면 상승 폭과 기후 유형의 변화(퀘펜기후구분법 기준)에 관한 연구자료를 토대로 점수를 매긴 ‘2050 기후변화도시 지수(2050 Climate Change City Index)’를 발표했습니다. 보고서는 세계 젊은이들의 여행지로 인기가 높은 85개 도시를 조사 대상으로 삼았고, 기온 변동 비교의 기준은 1971~2000년 평균 기온으로 하였습니다. 분석 결과, 기후변화 지수(100점 만점 기준)가 가장 높은 도시는 타이의 방콕(100점)이었습니다. 이어 베트남의 호찌민(85.3), 네덜란드의 암스테르담(84.3), 중국의 선전(62.2), 호주의 멜버른(49.5)이 차례로 상위 2~5위를 차지했습니다. 서울 역시도 45.8점으로 상위 10위권에 들었습니다. 6위인 영국 카디프(47.0)에 이어 종합 7위입니다. 특히 서울은 기후 유형의 변화에서 케냐 나이로비에 이어 2위를 기록했습니다. 보고서는 서울의 기후가 현재의 ‘대륙성 더운 여름’에서 ‘온대성 건조 겨울 더운 여름’ 기후로 바뀔 것으로 예측하였는데요, 서울의 연간 평균 기온 변동폭 예상치는 2.12도였습니다. 조사 대상이 된 85개의 도시 중 서울이 기후변화 위험도가 종합 7위라는 것은 결코 쉬이 넘길 수 없는 결과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보고서가 아니더라도 많은 사람들은 그것을 변화한 환경을 통해서 몸으로 느끼고 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이상 기후 현상이 지난달 전국 곳곳에서 나타났고, 기상청은 올해 1월 전국 평균 기온이 2.8도로, 전국 단위 기온 관측을 시작한 1973년 이래 가장 따뜻한 1월이었다고 발표했습니다. 제주는 한 때 23.6도까지 기온이 올라 이른 봄꽃들이 꽃망울을 터뜨리는 현상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온도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개구리들도 여기저기서 관측되기 시작했습니다.
기후변화가 계속돼 자연 생태계가 바뀔 경우 우리나라는 2050년까지 최소 100억 달러(약 11조 8750억 원)의 국내총샌산(GDP) 손실을 볼 것이란 전망도 나왔습니다. 국제환경단체 세계 자연기금(WWF)에서 지난 12일 발표한 ‘지구의 미래’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은 환경 위기에 따른 경제 손실 수준이 조사 대상 140개국 중 7번째로 심각합니다. WWF는 “식량 가격 상승과 가뭄, 해수면 상승은 이미 전 세계적인 현상”이라며 “환경 파괴가 계속될 경우 다음 세대는 돌이킬 수 없는 경제적 손해를 보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출처 : WWF Global Futures 홈페이지
기후 위기에 대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면서 관심은 우리나라가 올해 말 유엔기후변화협약에 제출할 ‘2050 장기 저탄소 발전전략(LEDS)’에 쏠리고 있습니다. LEDS는 파리기후변화협약에 따라 협약 당사국들이 올해까지 세워야 하는 전략인데요, 그에 따라 ‘2050 저탄소 사회 비전 포럼(저탄소 포럼)’ 은 LEDS의 가이드라인이 될 검토안 5개를 정부에 제출했습니다. 하지만 이 검토안에 대해 130여 개 환경단체의 모임인 ‘기후위기 비상행동’ 측은 “화석연료 사용 금지 등 과감한 안을 바탕으로 한 탄소중립(넷제로-Net Zero) 방안이 없다”는 것에 비판 성명을 내놓았습니다. 프랑스와 독일, 이탈리아, 핀란드, 영국 등 65개국은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달성하겠다”고 선언한 상태이기 때문에 이러한 비판 성명에 대해 정부는 입장을 분명히 할 필요성이 생겼습니다. 환경부는 “올해 안에 저탄소 포럼이 제안한 검토안과 탄소중립 방안도 국민 논의에 부쳐 최종안을 확정할 것”이라며 “탄소중립을 목표로 국민 모두가 함께 나아갈 수 있게 사회적 합의가 이뤄지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기후위기는 후세의 문제가 아닌 현대에 당면한 문제입니다. 지금 해결책을 강구하지 않는다면 훗날 기회는 없겠지요. 기후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것은 다른 누군가가 아닙니다. 많은 시민들의 의지가 하나로 합쳐져 정부와 기업, 시민 모두가 함께 노력해야 우리 후대에 ‘지속 가능한 지구’를 물려줄 수 있지 않을까요? 그렇게 하기 위해 작은 것부터 행동하고 정부와 기업을 감시해야 하는 시기가 바로 지금이 아닐까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