긱 이코노미 시대, 플랫폼 노동자를 위한 사회 안전망
코로나 바이러스 19 가 우리의 일상을 변화시키고 있습니다. 학교들이 개강을 미루고, 수업을 온라인으로 진행하고 있으며 거리는 썰렁해졌습니다. 사회적 거리두기 캠페인이 진행중이고, 전염병의 확산을 막기 위해 사람들은 만남과 외출을 자제하고 있지만 이로 인한 소상공인들의 피해도 막심합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코로나로 인해 촉발된 긍정적인 사회적 변화의 신호가 하나 발견되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긱 워커(Gig Worker : 주문형 노동자)” 들의 사회 안전망에 관한 논의입니다.
우버, 플랫폼 노동자들에게 수입을 보장하다
출처 : noeltock flickr
지난 3월 15일 승차공유업체 우버(Uber)는 미국에서 코로나19 확진 판정이나 자가격리 지시를 받은 기사에게 2주 간 수입을 보장한다고 공식 블로그에 발표했습니다. 진단서를 제출하면 그 기사가 평소 벌던 일당의 14일치를 우버가 직접 주겠다는 것입니다. 우버에 소속된 기사들은 사실 우버가 고용한 정규직 직원이 아닙니다. 긱 워커로서, 자신들이 일한만큼 가져가는 것이 본래의 원칙이며 회사는 그들을 정식으로 고용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부득이한 사정으로 기사가 일을 쉬게 된다고 해서 그들의 급여를 보장해줄 필요는 없었지요.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많이 변화했습니다. ‘긱 워커’들의 권리에 대한 논의가 각국 정부를 중심으로 시작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대표적으로, 캘리포니아 주에서는 지난해 긱 워커들의 권리를 보장하는 내용이 담긴 법안인 어셈블리 빌5 (Assembly Bill 5, AB5) 법안을 통과시켰습니다. 해당 법안은 올해 1월 1일부터 발효되었는데요. AB5에 따르면 우버 기사나 포스트메이츠 배달원으로 참여하는 이들은 독립적인 계약직 형태가 아니라 우버나 포스트메이츠 직원과 같은 고용 보호를 받을 수 있게 됩니다. 사실 플랫폼 기업들로서는 부담이 되는 일이지요. 기업은 계약직인 기사나 배달원들에게 초과 근무 임금, 헬스케어 등 기타 혜택을 제공해야하기 때문이죠. 이에 대응해 우버와 포스트메이츠는 캘리포니아주를 상대로 AB5에 대한 위헌 소송을 제기하기도 했습니다. 소장에서 두 기업은 “AB5는 온디맨드 경제에서 활동하는 회사들을 겨냥해 억압하기 위한 것이다”라면서 “직접 판매 영업 사원, 여행 에이전트, 건설 트럭기사, 상업 어부 등은 이번 법에서 면제되는 등 기준이 자의적이다”라고 주장하며 “AB5는 긱 이코노미에 참여하는 근로자들의 유연성도 위협할 것이다”라고도 지적했죠. 두 기업의 의견 역시도 타당한 부분이 있지만, 어쨌든 긱 워크들이 위기 상황에서 보호받을 수단이 적다는 것은 작금의 상황에서 여실히 밝혀졌습니다. 그렇기에 우버도 그들에게 보상을 주고자 주기로 결정한 것이겠지요.
이제 우버는 고용주로서 사회보장기여금을 부담하고
법정 근로시간 및 초과근무수당 지급 등을 준수해야 한다.
뱅상 룰레 변호사
미국 뿐 아니라 프랑스에서도 올해 초 ‘우버’의 운전기사를 자영업자가 아닌 직원으로 봐야 한다는 판결이 나왔습니다. 프랑스 최고법원인 파기법원은 지난 3월 4일 우버 운전기사가 독자적으로 손님을 모으거나 가격을 책정할 수 없고 업무 수행 방법도 선택 불가능하다는 점을 들어 자영업자로 볼 수 없다는 원심 판결을 확정했습니다. 재판부는 “우버 플랫폼 접속과 동시에 운전사와 회사 사이에는 종속 관계가 성립한다”면서 “운전사는 우버 직원으로서 이용자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라고 판시했습니다. 이번 재판은 2017년 6월 프랑스의 한 우버 운전사가 2년 간 근무 이력을 회사 측과 근로계약을 맺은 노동으로 인정해달라는 소송을 내면서 시작된 것인데요. 노동법원은 두 주체의 고용관계를 인정하지 않았지만 파리고등법원은 1심을 뒤집고 둘의 고용관계를 인정했습니다. 프랑스 현지 변호사 뱅상 룰레는 미국 블룸버그 통신에 이제 우버가 고용주로서 우버 노동자들에게 책임을 다해야한다고 이야기 하기도 하였지요. 하지만 우버는 이에 대한 확대 해석을 경계하고 있습니다. 우버는 바로 성명을 내고 “이번 판결로 다른 운전사들의 지위가 바뀌지는 않는다”고 밝혔지요. 우버 운전사들과 우버의 관계가 변화한다면 우버로서는 막대한 손실을 입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앞으로도 우버는 이 문제에 대해서는 방어적으로 대응할 것입니다. 하지만 긱 노동자들의 처우에 대한 논의가 촉발된 지금 우버가 언제까지 기존의 입장을 고수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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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의 사각지대에 놓인 ‘긱 노동자’
국내에서도 최근 이와 같은 긱 노동자들에 대한 법적 판결 사례가 있었습니다. 지난해 11월 5일, 서울지방고용노동청 북부지청은 음식 배달앱 ‘요기요’ 배달원 5명이 제기한 임금 체불 진정 사건에서 이들을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인정했습니다. 본래 프리랜서인 요기요 배달원을 노동청이 근로자로 본 핵심은 요기요가 이들에게 ‘관리·감독’을 했다는 데에 있습니다. 요기요가 △출퇴근 시간을 관리하고, △배달기사의 임금을 시급으로 지급하고, △근무시간과 장소를 지정했다는 것입니다. 이에 따라 요기요는 앞으로 이들에게 4대보험·퇴직금·각종 수당 등을 지급해야 합니다. 노동청에서는 이번 판단이 진정을 제기한 배달원들에게만 적용된다고 밝혔지만, 해당 사례로 인해 추후 다른 긱 워커들의 근무 여건에도 파장을 미칠지는 앞으로를 두고봐야할 일입니다. 대리운전, 배달, 가사도우미, 간병, 청소 등 비슷한 분야에서 사실상 플랫폼 업체의 지시를 받으면서 근로자로서 혜택을 누리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지요.
이렇듯 긱 노동자, 플랫폼 노동자가 업체의 지시 및 관리·감독을 받으며 무늬만 개인사업자로 전락한 배경에는 현행법이 근로자만을 보호한다는 데에 있습니다. 기업에서는 이들을 개인사업자로서 고용을 하기 때문에 4대보험이나 근로시간 준수 등의 보호를 받을 수 없습니다. 특수형태근로종사자에 한해 산업재해보험 적용 대상이 될 수는 있지만 새로 등장하는 무수히 많은 특수형태근로노동자들을 모두 보호해주지 못한다는 한계가 존재합니다. 물론 긱 워커 스스로 근로자로 인정받기 원하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근로자로 인정받으면 출퇴근 시간 압력에 시달리는 등 부담이 가중될 수 있기 때문이지요. 어떻게든 위험을 줄이며 운영하려는 플랫폼 업체와의 시각차도 존재합니다. 스타트업 관계자는 “모든 사람이 근로자로 인정받기를 원하는 것 같지는 않다. 자율성을 가지며 일하면서도 실업 상태에 처했을 때 보호를 받고 싶은듯 하다”며 “스타트업 입장에서는 부대비용을 줄이기 위해 보수적으로 나오는 경향도 있다”고 말했다.
노동청 이성종 서비스노조 기획실장은 “지금은 (긱 워커에 대한 정책이) 정비가 안 돼 있는 상황이다. 당장 근로기준법이나 노동법을 적용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면 이들에 대해서 안전망 제도를 먼저 확보하는 방식이 필요하다”며 “정부 차원에서 논의가 활성화되고 있다는 점은 긍정적으로 보지만 아직 제대로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상황은 아쉽다. 궁극적으로는 프랑스나 유럽처럼 플랫폼 노동자도 노동자라고 선언하고 노동법을 적용하는 방안을 고려해봐야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긱 워커 처우에 점차 관심을 가지는 세계 정부들
앞서 미국과 프랑스의 경우, 그리고 국내의 사례를 언급했는데요. 이외에도 점차 늘어가는 긱워커, 플랫폼 노동자들의 추세에 맞추어 세계의 정부들이 움직이고 있습니다. 호주 빅토리아주는 새로운 형태의 단기노동인 긱워커, ‘주문형 근로(On-demand Workforce)’가 논란으로 부상하자 노동자의 권리를 지키면서도 신산업이 제공하는 기회요인을 살리기 위한 실태 조사에 착수했습니다. 해당 조사는 빅토리아주 정부의 의뢰로 퀸즐랜드 공대, 애들레이드대학, UTS 시드니가 1만 4천명을 대상으로 공동으로 진행하였는데요. 역대 조사 중 처음으로 신빙성 있는 통계 조사가 실시되었고, 조사 결과 우버, 에어타스커 등 ‘긱 이코노미(Gig Economy)’에 종사하는 노동력이 전체 노동력의 7%를 점유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가장 많은 근로자들이 일을 하는 ‘5대 인기 디지털 플랫폼’은 에어타스커(35%), 우버(22.7%), 프리랜서(11.8%), 우버이츠(10.8%), 딜리버루(8.2%)로 나타났습니다.
연구를 진행한 앤드류 스튜워트 교수(애들레이드대)는 “놀라운 성과다. 예상보다 훨씬 빠르게 플랫폼 숫자가 급속 성장(proliferating)하고 있다”고 설명하며 많은 플랫폼 참여자들이 “긱 이코노미의 소득에 의존한다”고 밝혔습니다.팀 팔라스(Tim Pallas) 빅토리아 재무장관 겸 노사관계장관은 “설문조사 결과를 통해 많은 호주인들이 생활에 도움을 받기 위해 긱 노동에 의존한다(relying on gig work to make a living)는 점이 확인됐다. 이런 근로자들이 정당한 급여와 안전 근로 조건이 충족되는지도 중요하다”며 해당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긱 이코노미에 대한 주 정부의 대응 방안을 정리해 나갈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출처 : Bloomberg
새로운 사업들이 등장하면서, 기존의 법이 보호해주지 못하는 영역들은 점차 늘어나고 있습니다. 또한 새로운 비즈니스가 구 산업의 비즈니스와 충돌을 일으키는 경우도 있지요. 얼마전 최종적으로 결론이 난 택시 업계와 타다의 마찰처럼 말이지요. 전 세계적으로 플랫폼 노동자 인구가 늘어나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들을 보호하기 위한 사회 안전망이 필요하지요. 기업이 자신들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면서 노동자들의 기본권을 자발적으로 보장해준다면 가장 좋겠지만, 그러한 착한 기업이 있다면 법의 그늘에서 노동자들을 착취하는 기업들도 있게 마련이지요. 이번 코로나로 유발된 위기상황 속에서 미래를 대비하며 이들 긱 워커들의 사회 안전망에 대한 논의도 심도 깊게 이루어져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